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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間諜)을 잡다니
간첩(間諜)을 잡다니
  • 정 상 편집위원
  • 승인 2009.10.31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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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間諜)이라는 말, 더군다나 ‘간첩을 잡았다’는 말을 정말 오래 만에 들었다. 37세 이모 강사가 바로 무려 지난 17년 동안 남한의 주요 국가기관을 드나들며, 국가기밀을 몰래 빼내 북한에 제공해왔다니, 영 믿기지 않는다.

더군다나 국가보안법이 유명무실해지고, 반공이라는 말조차 사라진 마당에 어인 간첩인가? 차라리 그를 향해 ‘스파이(Spy)’라고 한다면 오히려 듣기 덜 거북스러울 것 같다. 스파이라는 말 자체가 곧 간첩이라는 말이지만, 사회적 적용에 있어서는 약간의 의미 변화가 있다.

간첩하면 반공이 국시이던 시절, 이적(利敵)활동 곧 국가기밀, 군사기밀 및 기타 사회정보를 북한에 제공해 북한을 정치군사적으로 돕는 이들을 총칭해 간첩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국가보안법 상 간첩죄를 적용해 구속했다. 하지만 스파이라는 말은 앞에 ‘산업’이라는 단어를 붙여 우리사회에 들어왔다. 따라서 간첩이라는 말과 스파이라는 말 사이에는 특정할 수 없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아무튼 한 때 국시이던 반공이라는 말이 사라진 마당에 간첩이라는 말은 언어적으로 이미 죽은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이 최근 다시 부활했다.

벌써 서너 해 전 이야기다.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었던 김용갑 의원은 통일부에 대한 대정부 질문 과정에 이종석 장관을 향해 ‘세작(細作)’ 운운했던 말이 기억난다. 세작(細作) 역시 간첩이라는 말과 그 뜻이 같다.

그러나 지금 일상에서 세작(細作)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는 드물다. 이 말 역시 간첩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언어적으로 거의 사용되지 않는, 곧 죽은 언어이다.

어찌되었던 앞서 말한 대로 간첩이라는 말이 다시 부활했다. 그것도 부활한 그 시점이 참으로 묘하다. 10.28 보궐 선거에서 집권당인 한나라당이 패하다시피 하고, 미디어법에 대한 헌재의 판결이 내려져 논란이 가열 되려는 찰나에 때맞춰 간첩이라는 말이 부활한 점이다. 정치적 의도가 배체된 우연의 일치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사실 지난 10년 이 땅에서 좌파세력이 득세하자, 반공이라는 말과 함께 간첩이라는 말 역시 사라졌다. 지난 10년의 시기에 사상의 지평이 크게 넓어진 것이다. 이 같은 사회현상은 자연스러우며 그 동안 사상의 지평을 옥죄고 있던 남북관계가 크게 개선되고, 세계사적으로도 공산주의가 몰락하면서 나타났다.

이와 함께 개인권이 크게 강화되면서 국가는 가급적 개인의 생각을 포함한 행동 전반에 대해 그 어떤 제약도 가하지 않는 것을 대원칙으로 삼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에는, 앞서 말했듯이, ‘간첩’이라는 말이 다시 부활했다. 이는 곧 개인에 대한 국가적 혹은 사회적 제약의 강도가 그 만큼 더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즉 특정 개인행동에 대해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간첩죄로 구속한다는 것과 형법에 의거하여 일반 형사범으로 구속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특정 개인의 행동에 대해 국가보안법 상 간첩죄를 적용할 경우 이는 자칫 개인의 사상적 자유를 제한할 가능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 모 강사의 행동이 옳았다는 뜻은 아니다. 적이 되었든 경쟁상대가 되었던 그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 자신이 속한 집단의 기밀을 저들에게 제공했다면 이는 분명히 범죄행위이며, 의당히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200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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