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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죽음
이 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죽음
  • 정 상 편집위원
  • 승인 2009.10.3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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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노환으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은 오늘(31일)이다. 향년 85세니 서러울 것 까지는 없다고 하겠다.

더군다나 그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창출하고 향유하기까지 했다.

이후락은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5.16 군사혁명 직후 꾸려진 국가재건회의 의장(박정희)의 공보실장으로 발탁되었고, 1963년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된다. 이로서 그는 이후 줄곧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된다.

이후 제6대 중앙정보부장으로서 1972년 유신정권을 옹립하고, 이듬해인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까지 주도한다. 특히 그는 소위 7.4 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 낸 주역으로서 72년 5월 대북밀사로 평양에 파견되어 당시 김일성 주석과 독대하기까지 했다.

그런 그에게 시련기가 닥친 것은 흔히 말하는 윤필용 사건이다.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이었던 윤필용이 “박정희의 후계자는 이후락”이라고 밝혀 파문이 일자 이 때 이후락 역시 숙청된다.

그러나 79년 민주공화당 유정회 의원으로 정치에 다시 발을 들여 놓았으나, 10.26 사태와 함께 정계를 떠난다.

이후 침거에 들어 간 그는 비록 한 시대를 풍미했던 권력자였지만, 세월의 풍파만은 그로서도 비켜가지 못했다.

아무튼 그는 오늘 비로소 죽음에 이르러 진정한 자유를 얻은 셈이다.

200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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