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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가 낙후되었다”는 소릴 듣지 않으려면
“한국정치가 낙후되었다”는 소릴 듣지 않으려면
  • 정 상 편집위원
  • 승인 2010.01.05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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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정치의 낙후성이 자주 거론된다.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정치의 후진성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가 돌아가는 꼴을 보면, 도대체 한국정치는 왜 이 모양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한국정치가 앞서 지적처럼 정말 낙후된 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사실 한국 정치는 매우 안정되어 있다. 특히 정치제도의 안정성은 그 어느 국가와도 비길 바가 아니다. 물론 대통령 1인에게 국가권력 대부분이 집중된데 따른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북이 분단되어 있다는 점과 국정운영의 효율성 측면에서 보면 이 또한 그리 나쁘지 않아 보인다. 아무튼 이 문제는 개헌이 전제되어야 하는 만큼 새로운 논의가 필요한 부문이다. 따라서 이 점을 가지고 한국정치의 낙후성을 말하는 것은 어패가 있다.

 현 정부는 87년 체제의 5섯 번 째 정부다. 87년 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대통령 직선제와 경제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조항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87년 체제를 미완성이라고 보는 이유는 바로 국가권력이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된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한국정치의 낙후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앞서 지적한 대로 무리다.

 지금 한국정치의 문제점은, 국회가 운영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정당간의 지나친 물리적 대결구도다. 정책으로 승부해야 할 정당 간의 대결이 세력을 토대로 하는 물리력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한편 이 같은 국회의 대결구도는 보스정치의 그림자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소위 3김 시대 또한 막을 내렸지만, 아직도 그 기운은 국회에 그대로 남아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이제 곧 사라 질 전망이다. 한국정치에 있어서 보스 정치가 가능했던 것은 바로 정당의 공천재도와 정치자금 때문이었다. 즉 보스 정치인에게 공천권과 함께 정치자금 또한 집중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 근저에는 지역주의라는 패거리 정치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제 정당의 공천제도나 정치자금의 집중 문제가 해소되는 과정에 있다. 이 문제가 해소되면 현재 자주 발생하는 국회 내에서의 세 싸움에 의한 국회의 파행 또한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이를 제도적으로 완성하려면 개헌이라는 절차를 거처 대통령에게 집중된 국가권력을 분산해야 한다. 이 이전에도 국회는 운영의 묘만 살린다면 충분히 앞서 말한 파행을 막고 국회의원으로 하여금 올바른 의정활동을 전개하도록 할 수 있다. 바로 개별 국회의원이 의정활동을 함에 있어서 소신을 가지고 원칙을 지켜내면 된다.

 국회는 분명 한국정치의 주체 중의 하나이며, 국회의원의 경우 국민의 선택을 받은 만큼 소신을 가지고 국회운영에 임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국회의원은 당론 혹은 당의 정책 혹은 정치노선에 발이 묶여 있다. 그 이유가 앞서 말한 정치자금 때문이다. 당장 국회의원 후보가 되려면 상당한 금액의 기탁금이 필요하다. 아울러 선거공영제가 운영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선거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 이 비용의 상당부분을 당이 지원하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정치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 땅의 패거리 정치문화는 개선되기 어렵다. 당의 은혜를 입었으면 마땅히 그 은혜에 보답해야하는 것이 인지상정 인 것이다. 아울러 당의 정치노선에 반기를 들면 당은 징계 조치를 취하게 되고, 급기야 퇴출까지 시킨다. 이렇게 되면 다음 선거에 나서기 어렵고, 설령 나선다고 하더라도 무소속 출마라는 모험을 감행해야 한다. 물론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이 되면 문제는 달라지지만, 낙선하게 되면 모든 면에서 매우 어려운 지경에 처한다. 한 때 유명세를 탔던 정치인들 중 상당수가 단 한번 낙선으로 사회 낙오자가 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고 있다.

 아무튼 이런 정치 환경 하에서, 비록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국회의원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소신을 관철하기 어렵다. 한국정치가 낙후되었다는 소릴 듣지 않으려면, 앞서 말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관철시켜나가는 국회의원의 수가 많이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일개의 국회의원이 이 같은 정치적 행동을 취한다는 것은 사실 상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우리 국민들 중 이 같은 현실정치의 어려움을 제대로 이해하는 이가 드물다. 자연히 어려운 성택을 한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적 평가가 올바로 내려지지도 않는다.

 결국 앞서 말한 것처럼 매우 어려운 정치 환경 속에서도 소신 있고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을 많이 배출하자면 바로 국민의 올바른 선택이 있어야 한다. 바로 소신과 원칙을 지켜나가는 정치인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그것이다.

 지난 해 연말 말도 많고 탈도 많아 좀 채 합의를 도출할 수 없었던 노동관계법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어 의결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의 추미애라는 소신파 의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 추미애 의원은 당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았다고 하여 자칫 민주당으로부터 출당 조치가 내려질 수도 있는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

 과연 이런 추미애 의원의 정치행동을 우리 국민은 과연 얼마나 옳게 이해할까? 추미애 의원의 이 같은 정치행동이야 말로 한국정치의 낙후성을 극복할 수 있는 첩경으로 기능한다. 건강한 정치, 강한 한국정치의 면모를 보이자면 우리국회가 제 기능을 올바로 수행해야 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제도 이전에 바로 의정활동에 임하는 국회의원이 소신을 가지고 원칙을 지켜내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추미애 의원의 정치적 행동은 과히 영웅적이다. 그러나 추미애 의원을 선출한 지역구는 이런 추미애 의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또 만일 추 의원이 민주당에서 출당 당하는 등 어려움에 처한다면 지역구는 추 의원을 적극 보호할 것인가? 현실적으로 지역구의 정치성향과 추 의원의 행동 간에는 일정부문 괴리가 발생해 지역구는 더 이상 추 의원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정치의 낙후성은 개별의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문제다. 한편 이 문제는 종래 다시 정치 제도의 문제로 귀결되고, 정치제도 개선을 통해 개별의원을 보호하는 조치를 강구하지 않으면, 소신파 의원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문제는 언제나 제자리걸음에 머무르고 만다.

 결국 한국정치의 낙후성을 극복하자면, 먼저 국민의식의 전환과 함께 정치제도 개편을 통해 개별국회의원이 안정적으로 의정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정치 환경, 곧 정치제도를 창안해 정착시켜나가야만 한다.

20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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