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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감, 법원의 판단이 옳아
이질감, 법원의 판단이 옳아
  • 정 상 편집위원
  • 승인 2010.01.2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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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몇 건의 법원 판결(강기갑 의원 사건 및 MBC 피디수첩의 광우병 사건 허위보도 관련 판결)’이 사회 내부에 큰 파문을 부르고 있다. 국민의 법 감정과 이번 판결 사이에 일종의 이질감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사실 국민의 법 감정과 법원의 판결 사이에는 늘 충돌이 있어왔다. 그 이유는 판결은 법관의 양심과 법률에 기초해 있고, 국민의 법 감정은 보다 넓은 상식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누군가가 길거리에 떨어져 있던 금괴를 하나 주웠다 치자. 우리의 상식으로는 ‘길거리에 떨어져 있으니까 누구라도 줍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쉽다. 하지만 그것을 줍는 행위는 ‘점유 이탈 물 취득’에 해당되며, 자칫 별생각 없이 그것을 자신만의 공간에 일단 옮겨 놓으면, 이 행위는 곧 절도죄에 해당된다. 물론 예로든 것이 금괴여서 절도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며, 그 대상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형법에 규정된 법률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의 정황증거는 형량을 결정하는 데 일정부분 영향을 미친다.
만일 길거리에 떨어져 있던 물건이 볼펜 한 자루였고, 그것을 누군가 주워서 사용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 주은 볼펜에 주인임을 확증할 수 있는 표시가 있고, 이후 주워 사용하다 그 볼펜 주인을 우연히 만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고 치자. 이 때 그 볼펜의 주인이 상대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 자신의 것임을 확인하고 돌려달라고 주장했음에도 주웠다는 이유로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았을 때, 볼펜의 전 주인이 잃어버린 사실을 근거로 현재 볼펜을 주워 사용하는 이를 절도죄로 고발하면 볼펜을 주워 사용하고 있던 이는 당연히 절도죄로 처벌 받는다. 물론 이는 극단적인 예로 볼펜같이 사소한 물건을 잃어버렸고,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가 주워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설령 그 물건의 주인이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을 돌려달라고 했는데 돌려주지 않았다고 하여 고발에 까지 이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아주 사소한 물건을 주워 사용하더라도 절도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사소한 물건을 주워 사용하는 경우 절도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상식이 생겼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대로 엄격한 법률적 젓대를 들이 대면, 아주 사소한 물건조차도 내 것이 아닌 것을 위치를 변경하여 내 것처럼 사용하면 그것은 절도죄에 저촉되는 것이다.
다만 앞서 지적한 대로 굳이 법률적 책임을 묻고자 할 때에도 역시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물건을 가지고 고소 혹은 고발에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앞서 말한 비용의 예를 적시하면 다음과 같다. 즉 우선은 고발에 필요한 서류 작성이 있어야 하고, 이어 이를 관련 기관에 접수시키는 절차적 행위가 또한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으로 모든 행위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후 관련기관에 출석하여 적극 진술할 의무 또한 진다. 제아무리 할 일이 없는 이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그 사소한 볼펜 한 자루를 찾고자 고발에 나서는 어리석은 이는 없다. 아무튼 아무리 사소한 행위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사회적 행위는 그 대부분이 엄격한 법률적 잣대를 들이대면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그 대부분의 행위가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생각의 차이가 법과 국민 생각 사이에서 충돌을 일으킨다. 큰 틀에서 보면 이번 제기된 몇 건의 법원 판결이 문제가 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국민의 법 감정과 해석의 차이에서 온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법 적용의 사회적 경향을 어느 정도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근년 들어 우리사회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로 배심원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조치가 이러한 법 적용의 사회적 경향을 담는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는 사회의 민주주의적 발전이라는 귀결이 담겨 있다.

그러나 지난 2008년 2월 정권이 그 동안의 진보세력으로부터 보수 세력에게로 이양됨에 따라 우리사회는 기존의 법의 사회적 적용에 대해 부정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앞서 말한 ‘몇 건의 판결’이 문제가 되는 것도 기본적으로 국민의 법 감정과 법률의 구체적 적용의 충돌에서 오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권과 사법부 간의 갈등으로 확대 해석하려는 경향이 정치권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어떤 시각을 견지하느냐에 따라 달리 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때 우리가 적용해야 할 것이 사회발전의 정도를 그 준거로 삼아야 한다.

예를 들어 MBC 피디 수첩이 보도한 내용을 대부분의 국민이 이해 혹은 검증할 수 없는 정도의 사회라면, 즉 사회 발전 정도가 일 방향에 의존하는 정도라면 MBC 피디 수첩뿐만 아니라 모든 방송이 항시 매우 신중해야 하고, 그 같은 보도 행태가 짓는 사회적 책임의 무게 또한 더 한층 커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한국사회 발전 정도를 고려할 때 대부분의 국민이 방송 일방향성을 그대로 수용한다고 보기 어렵고, 특히 많은 국민이 특정 방송사의 방송내용을 100%로 사실로 받아들이거나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이번 판결을 법관의 이념 성향이 부른 자의적 판단으로 몰아세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여당의 입장이나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번 판결이 충분히 자신들의 정치적 의지와는 다른 결과이므로 당황해하거나 충격적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전체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번 판결은 그리 예외적이지도 않다. 더군다나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고려할 때, 이번 판결에 정치권 특히 여당이나 청와대가 적극 개입하는 것은 부당하다. 다른 면에서 법원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보루로서 기능해야 하는 국가기관 중의 하나라는 점, 곧 정권을 견제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만일 국회는 물론이고 법원마저 정부 편을 드는 듯한 경향 속에 있다면 이 나라는 결코 옳은 길로 나아가지 못한다. 물론 많은 국민은 국정운영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의 국가와 국민을 위한 마음의 진정성을 믿고 수용하지만, 국정운영이라는 것이 대통령의 의지와 진정성만으로는 반드시 국민에게 이롭게 운영되지 않는다.

현실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서민의 경제사회적 고충을 생각하고, 친 서민 정책을 보다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구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비상경제정부를 꾸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나 정부가 분명히 서민을 위해 입안한 정책이지만 해당 정책의 집행 결과가 본래 정부의 의도와는 다를 결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4대강 복원 사업의 경우 국가와 국민의 현재 및 장래를 위한 것이지만, 막대한 공사비를 들여 시설하는 이 사업으로부터 지금 당장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곳은 역시 서민이라기보다는 이 공사를 수주한 몇몇 대형건설업체들이다. 이런 결과가 대부분의 정책에서 나타난다. 건설 공사 뿐만 아니라 기타 정부가 사용하는 물품조차도 조달청을 통해 정부에 공급하자면 기술이나 자본 등의 면에서 충분히 안정된 기업이라야 가능하다. 물론 정부조달물자의 경우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중소기업 우수 상품제도를 두어 중소기업 제품을 일정량 우선 구매해주는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그기에 이르기까지 또한 상당한 비용이 든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이래저래 취약한 것이 사실이고, 이 사실만큼이나 중소기업의 정부 조달물품 공급에는 그만큼 취약한 것이다.

이렇듯 사회현상 혹은 정부 정책이라는 것이 정부가 의도한 목적을 이룩하는 것보다 본래 의도와는 달리 에초 정부의도로부터 벗어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점들을 망라할 때, 앞서 말한 법원의 판결은 사회발전 정도에 대한 정부 측의 이해부족과 정부의 국민을 위한다는 과신이 빚은 특정 사회 현상이다. 즉 정부는 정치적 목적을 실현해야 하지만, 그 같은 목적 또한 사회발전 정도를 수용하는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현 정부 및 여당에는 이런 시각이 매우 부족하다. 따라서 여당 및 정부 측은 관련 판결로부터 이질감을 느끼게 되고, 종래 이 문제를 이념의 영역으로 넓혀 생각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만일 정부나 여당이 우리사회의 발전 정도를 고려한다면, 이번 사법부의 판단을 오히려 중요시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여당이나 정부가 주도해 이번 문제를 이념의 문제로까지 비약시키는 것은 잘 못이다.

극정운영의 대상은 모든 국민이다. 이렇게 넓게 생각해야만 모든 사안을 옳게 바라볼 수 있다. 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면 이것은 모든 국민들에게 매우 불행한 일이다.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는 일은 정부가 우선 그 중심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 때 모든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게 되고, 정부 정책 또한 지지하게 되는 것이다. 의당히 이 때 비로소 정부는 국민 대통합을 실현 할 수 있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최근의 사법부 판단이 옳다고 하겠다.

20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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