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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해설)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위험한 행동들
정국해설)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위험한 행동들
  • 정 상 편집위원
  • 승인 2010.04.04 11: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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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전 대통령은 좌파가 아니었다.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한 진보세력은 노무현 대통령을 앞세워 열린우리당을 창당하고, 100년 정당을 부르짖으며 진보세력 중장기 집권구상에 나섰다. 그들이 처음 선택한 행동은 기득권 세력과의 대 결전이었다. 이를 확산시키기 위해 그들은 강⦁남북 간 대결구도를 조장했다. 이 때 등장한 것이 세제(부유세) 논란이다. 강남의 부자와 강북의 서민, 그러나 그들은 현명했다. 그 싸움에 말려들지 않았다.

이후 그들은 이념대결을 촉발시킨다. 이 때 동원된 것이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을 비롯해, 사립학교법 개정 등 소위 4대 개혁입법의 관철이라는 적극적 행동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과거사 진상 규명위원회를 설치하고, 과거 군사 정부가 저질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국사건들에 대한 재조사에 나선다. 그러나 그것의 파괴력 또한 미진했다. 이미 민주적 역량을 갖춘 국민의 힘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를 통해 그들은 진보세력의 중장기 집권구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를 구현하기 위해 전개했던 이념논쟁이 자칫 사상논쟁으로 비화조짐을 보이자 이들은 급거 중도론을 표방하면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이것은 분명 그들의 실수였다. 당시 그들은 집권세력으로서 힘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이처럼 후퇴시킨 것은 분명 그들의 판단에 문제가 있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당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과 실질적 집권세력으로서 청와대가 서로 엇박자를 내는 등, 힘을 결집시키지 못한 까닭이다.
여기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진보적 실용주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가난한자, 곧 서민 삶의 질 개선에 목숨을 걸었지만 결코 이념에 목숨을 걸지는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좌파 이념을 뺀 실용적 진보주의자였다.

이로써 노무현 대통령은 그들 사이에 끼어 있던 최대 난제 곧 대북송금특검을 받아들였으며, 이는 지난 정부와 현 집권세력 간에 갈등을 촉발시키는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한편 그들은 앞서 말한 자신들의 장기집권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전개했던 이념논쟁을 중단한다. 그 주된 이유는 지난 30여 년 동안 이 땅의 국시였던 공산주의 배척이라는 국민의 기본정신을 그 어떤 노력으로도 한 순간 뒤바꿔 놓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이 선택한 것은 지난 정부의 햇볕정책을 승계해 북한과의 교류확대, 곧 대북포용 정책의 확대이다.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남북정상회담 개최 카드를 꺼내든다. 그리고 그것은 주효했다. 하지만 그 시기가 너무 늦어 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이와 함께 그 동안 진보세력이 구축하려 했던 보다 완전한 자유주의의 확대 역시 실패하고 만다. 이 실패의 배경에는 그들의 행동주의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저리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들 역시 국가구조 및 사회개혁을 통해 국민경제를 되살려 국민 삶의 질을 개선하고자 했지만 이 부문에서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 자연히 국가경제의 체질은 그들이 전개한 혁신경제를 통해 상당히 개선했지만, 국민의 경제적 어려움, 곧 서민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 실패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는 말과 결합되면서 국민의 미래 불안을 가중시켰고, 종래 정부와 집권당에 대한 불신을 크게 확대시켰다. 정부와 집권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소위 정부 국정운영의 중간 평가적 성격을 띠는 각종 선거에서의 대패로 나타났다.
그 중 하나가 바로 2006년 5.31 전국동시 제 4회 지방선거에서의 대참패이다. 이 선거 결과를 고지하면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은 한나라당이 1위 한 곳의 수를 표시한다.

※) 시도지사: 1( 12), 구시 군 장: 19(155), 광역의원 비례대표: 1(13), 시도의원: 33(506), 기초의원 비례: 7(154), 구시 군 의원: 90(759)

이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참패는 2007 대선의 향배를 갈랐고, 이후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의 해체를 촉발시키는 한편 청와대로 하여금 재집권 의욕조차 꺾는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운영 난맥상과 맞닥뜨렸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퇴진할 수도 있다”는 배수의 진과 함께 한나라당에 대해 대 연정까지 제안한다.

그러나 그의 뜻은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에게 조롱의 대상으로만 남고 만다.

어쩌면 지난 정권의 진보세력은 자신들이 추진한 덫에 걸려 자멸했다. 2006년 5.31 지방선거 이전까지만 해도 상당수 국민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고, 열린우리당에 대해서도 안정적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그들이 무리하게 추진한 개혁입법이 국민정서를 손상시키는 한편 국민저항을 부르고 말았다. 특히 집권 후반기에 실시된 5.31 지방의원 선거는 그로부터 1년 6개월 여 뒤에 실시된 제 17대 대통령 선거 결과로 드러났고, 이 선거에서 보수 세력은 정권의 교체라는 대성과를 거둔다. 정권을 내어준 지 10년 만의 일이다. 이 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당시 집권여당 후보인 정동영 후보보다 무려 530여 만 표를 더 얻는 대승을 거뒀다.

사족을 하나 덧대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평소 견지한 정체성 문제이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직후까지 자신이 좌파가 아님을 말하곤 했다. 이런 점과 대통령으로서 국정운영과정에 보인 자신의 성향 역시 이념을 뺀 진보적 개혁주의자임을 드러냈다. 바로 대통령 재임 시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에 적극 나선 점이라든가 기타 이라크 전쟁 등 주요 전쟁에 한국군을 파견하여 미국을 도운 것 등이 그 예이다.

보수 집권 세력(한나라당과 청와대)의 위험한 행동들

보수세력 역시 재집권과 동시에 2007 대선 선거전을 주도했던 인물 중 한 명인 최시중(현 방송통신위원장)은, 어느 사석에서 “이제는 보수 세력 중장기 집권 구상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 보수세력 역시 중장기 집권 구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보수세력이라고 하여 중장기 집권 구상에 뾰족한 방안이 있을 리 없다. 다만 현 정권이 안정적으로 국정운영에 나설 수 있는 집권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 필요했다.
이를 위해 전개했던 것이 미디어 관련법의 개정이었다. 이 외에도 이명박 정부는 소위 각종 규제개혁을 단행했다. 이 가운데 의료보험법 개정안이나 기타 몇 법안은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여 논의자체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다. 그 자리를 매운 것이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경부대운하 건설 방안과 미국 산 쇠고기 전격 수입 협정 체결이 부른 광우병 파동이었다. 이로 인해 국회는 개원조차 하지 못한 채 상당기간 방치되었다.

어쨌든 이후 미디어 관련법 개정은 위헌 심판까지 청구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일단 제정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집권세력의 밀어 붙이기 전략에 많은 국민적 저항이 뒤따르고 있다. 이 점을 입증하는 예가 바로 집권 초기, 비록 쇠고기 파동의 여파도 크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한 자릿수 대까지 추락한 것이다.

그러나 집권 2년 차에 들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특유의 외교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세계주요 20개국(G20) 정상 회의의 한국 개최와 더불어 지난 해 연 말 아랍에미리트연합으로부터 약 400억 달러에 달하는 원전건설 플랜트를 수주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대 국민지지율이 크게 상승했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대 국민 지지율이 최근 50% 대를 상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서해 백령도 남측 인근 해상에서 우리의 전함 천안함이 침몰하면서 그런 상황에 대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 다수의 국민은 이번 서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우리의 전함 천안함의 침몰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자, 현 정부의 자작극이 아닌가하는 의구심마저 갖게 되었고, 그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 국민의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침몰해 있는 천안함이 인양된 이후에도 그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으면, 야당은 이를 분명히 문제 삼을 것이 틀림없다. 즉 야당은 이번 사건을 과거의 전례 곧 북풍 등에 비추어 해석하려 들것이다.
더군다나 이 사건은 제 5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6월 2일 실시)를 불과 두 달여 앞두고 발생했다. 이와 함께 현 정부의 최대 역점 사업인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와 ‘세종시 건설 원안 수정안’이 국민적 논란을 부르고 있는 때에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앞서 말한 현 정부의 두 정책에 대한 모든 논란이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정부가 이 점을 노린 것 아니냐?라는 국민적 의구심이 본격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튼 이번 천안함 침몰 사건의 원인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못할 경우, 곧 이번 사건이 자칫 잘 못 비틀어 질 경우 국군통수권자로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이 문제는 국가안보와 직결된 문제로서 자칫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로 급부상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최근 일본이 자국 내 초등학교 검정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명기‘함으로서 신성한 대한민국의 국권을 악의적으로 유린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보다 강력하게 대응하는 등 정부적 조치가 뒤따르지 않으면 주권 수호의 책임을 물어 이명박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또 나올 수 있다.
이 같은 외교적 문제와 함께 현 집권당인 한나라당이 제 4회 잔국 동시 지방선거 후보 선정을 위한 공천심사위원회의 활동이 공정하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즉 지난 4.9 총선의 공천심사과정에서처럼 친박후보 배제라는 큰 틀의 기조를 유지할 경우 한나라당조차 분열과 함께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이를 예고하듯 시중에는 벌써 박근혜 의원 죽이기가 자행되고 있다는 말까지 떠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말이 바로 ”차기 대통령으로서 박근혜 의원이 아니면 그 누구라도 좋다“이다. 만일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곧 현 정부의 정권 재창출 의지가 벌써부터 꺾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는 곧 6.2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완패를 의미 하는 것이기도 하다. 만일 이처럼 이번 6.2 지방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완패하면, 청와대와 한나라당 주류세력 간에도 엇박자가 날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한나라당은 산산 조각 난다. 마치 2006년 5.31 전국동시 지방의원 선거 결과에 따라 나타난 당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과 청와대가 엇박자를 내었고 이후 분열과 갈등에 빠져 헤어자니 못했듯이 말이다.

지금 집권당으로서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모든 면에서 행동들을 매우 조심해야 한다. 설령 그것이 정책과 연계된 행동이어도 마찬가지다. 지금 많은 국민은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태도를 의아한 눈초리로 애써 바라보고자 한다. 즉 6.2 지방 선거 이후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전개할 개헌문제 역시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본다. 즉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보수 세력의 장기집권 구상의 일환으로 앞으로 전개될 개헌정국을 이용하려들 것이다. 전혀 그런 뜻을 담지 않더라도 야당은 그런 뜻이 내포되어 있다면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지르려 들 것이다.

국민의 심판은 언제나 냉엄하다. 그리고 청와대를 비롯한 정치집단의 정체행위를 모두 다 본다. 그리고 판단할 줄 아는 국민이다. 이 사실을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반드시 되새겨야 한다. 이후 청와대나 한나라당이 행하는 모든 행동은, 설령 그것이 정책과 연계된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어도 국민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등 문제 삼게 된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박근혜 의원을 포용하지 못하는 한 정권 재창출 또한 불가능하다.

20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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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gxjxilp 2010-05-26 09: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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