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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 열사 1주기 추모제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 열사 1주기 추모제
  • 이흥섭 기자
  • 승인 2010.05.01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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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30원 때문에 생때같은 자식 남기고 떠난 고 박종태 열사
택배요금 ‘30원 인상’을 외치다가 가족에게 유서를 남기고 떠난 ‘특별하지 않은 사람’ 고 박종태 열사(당시나이 39) 1주기 추모제가 광주 민족민주열사 묘지에서 열렸다.

고 박종태 열사는 사망하기 전 화물연대 광주지부 1지회장으로, 대한통운 택배노동자 78명의 집단해고에 항의하며 해고자들과 함께 50일에 가까운 천막농성을 전개해 왔다. 이에 대해 금호자본인 대한통운은 업무방해, 집시법 위반 등의 명목으로 고소하여 체포영장을 발부, 수배 중이었다.

▲ 작년 5월 9일 대전 노동자대회에서 부인 하수진 씨가 “여보! 오랜만에 불러보네. 나는 아직도 실감이 안 나. 당신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병원에 걸린 사진 속에서 당신이 튀어 나올 것만 같고, 다른 화물연대 조합원들처럼 바쁜 듯이 걸어 들어올 것만 같고, 큰 아이 말처럼 당신이 장난을 치고 있는 것만 같아”며 고인이 된 박종태 열사에게 눈물의 편지를 낭송하고 있다. ⓒ광주전남아고라 제공

박 열사는 30일 새벽, 대전 대덕구 읍내동 대한통운 화물터미널 앞 야산에서 아카시아 나무에 “대한통운은 노조탄압 중단하라”는 펼침막과 함께 목을 매고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택배요금 30원 인상을 외치며 처절하게 싸웠던 고 박종태 열사, 그는 늘 투쟁의 현장에 있었다고 하며 양말을 갈아 신을 시간이 없어 발꼬랑내가 진동을 했다고 한다. 박 열사는 사망한지 사흘 뒤인 3일 밭일을 하던 농부에 의해 상망소식이 전해졌고, 대전 중앙병원에 분향소가 마련됐다.

▲ 박종태 열사가 사망한지 52일 째 고향인 광주로 돌아오고 있다. ⓒ광주전남아고라 제공




하지만 민주노총 광주본부(당시 강승철 본부장)는 “해고자 복직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장례식을 무기한 치루지 않기로 결정했다. 물론 아내 하수진(38세) 씨와 그이 가족들의 눈물어린 결정이었으며, 열사만큼이나 강건한 결정이었다.

노사대립은 박 지회장 자살 이후에도 진전이 없다가 민주노총의 총력 투쟁과 국민여론 등에 떠밀린 회사쪽이 5월 15일 최종협상안에 합의하면서 장례식이 이뤄졌다. 박 열사의 죽음으로 맞바꾼 노사합의였다.

▲ 민주주의 성지 옛 전남도청, 망월동에 안장된 거의 모든 열사들이 이곳을 지나간다. 하지만 그때 옛 전남도청도 철거논란 속에 휩쌓여 있었다. ⓒ광주전남아고라 제공

이때 합의한 내용은 ▲총파업 철회 ▲해고자 38명 3월15일 이전의 조건으로 복귀 ▲노사 양측 민형사상 고소. 고발, 가처분 소송 취하 등에 합의 했으나, 합의주체가 ‘화물연대’가 아닌 대한통운 광주지사 택배분회장으로 명기, 또 30원 임금인상 문제,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등은 해결되지 않아 반쪽짜리 합의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부인 하수진 씨 역시 열사의 아내다운 강건한 모습을 보여 수많은 사람을 눈물짓게 했다. 5월 9일 대전 노동자대회에서 박 씨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지 말라”, “고인의 유언대로 악작같이 싸워서 사람대접 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며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의연함으로 동료노동자들을 응원했다.

이에 따라 장례식이 사망한지 52일째인 6월 20일 치러졌다. 박 지회장의 장례는 이날 오전 대전에서 발인하여 오후5시 광주 옛 전남도청 노제를 치른 후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먼저 가신 선배 열사들을 만나로 떠났다. 장례는 노동장으로 치러졌다.

박 열사는 유서에서 “끝까지 싸워서 반드시 이깁시다. 책임지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본부가 움직이는 투쟁을 만들겠습니다. 이 투쟁은 여러분의 승리입니다. 흔들리지 말고 동지와 조직을 믿고 함께합시다. 동지들과 함께했던 수많은 시간이 행복했고 소중했습니다. 승리의 기쁨을 함께하지 못해 아쉽지만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라고 남기며 아내 하수진 씨와 딸 혜주(올해 10세), 정아(올해 7세)를 남기고 비바람이 하늘의 눈물을 위로로 떠났다.

한편 고 박 지회장은 사망한 날 저녁 동료노동자의 모임에 참석하여 운동가요 ‘민들레처럼’을 불렀다고 전해져 죽음을 앞둔 고인의 품성과 노동운동에 대한 다짐 등에 대한 추모와 슬픔이 더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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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안병현 부장 gosong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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