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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우리 근대의 루저들
[신간] 우리 근대의 루저들
  • 이순호 기자
  • 승인 2020.10.19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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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브리핑 이순호 기자] 김병길 숙명여대 교수가 쓴 ‘우리 근대의 루저들’은 중고교 교과서에 수록되지 않은 한국 근대소설의 주요 작품들을 소환하고 있다. 독자의 소설 읽는 안목을 높이고 독서 지평을 넓힐 목적에서 쓰인 책이다.

김 교수는 저서를 통해 우리의 근대소설의 주요 작가들에 관한 여러 오해와 그들이 남긴 빼어난 작품들에 대한 오독을 바로잡고자 했다. 또한 그 안에 담긴 우리말과 표현의 아름다움을 새기고자 했다.

이 책은 2018년 발간된 ‘우리말의 이단아들’(글누림)의 후속편이다. 전편에서 다루지 못한 최서해, 홍명희, 한설야, 심훈, 백석, 허준, 이기영, 현덕, 정비석, 황순원 등에 관한 뒤늦은 보고서인 셈이다.

“우리 근대의 소설가들은 자칭 타칭 천재요 지식인이었지만, 그들의 최고 비기라 할 글쓰기가 밥벌이가 된 순간 이내 가난을 제2의 숙명으로 떠안아야 했다. 그림자처럼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는 빈궁은 필연코 이들에게 질병을 선물했고, 드디어 그들의 무릎을 꺾어놓고야 말았다.

소설쟁이로 불린 그들은 얼어 죽어도 곁불은 쬐지 않는다는 앞선 시대의 문사(文士)로 더 이상 남을 수 없었다.

자신이 목멘 글쓰기에 숨을 내놓고야 마는 루저(loser)로서 그렇게 그들은 스스로 예비한 몰락의 수순을 밟아갔다. 한국의 근대 소설사는 가히 이들 루저가 미리 쓴 공모의 종생기(終生記)나 다름이 없다.”

우리 근대의 루저들이 남긴 그 유언장을 소설 나부랭이라 비아냥대는 듯한 환청에 숱하게 시달리면서도 이 책의 집필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그들의 글쓰기가 생존을 위한 각혈과 각골의 기록이요, 정신의 고투이자 노동이었다는 사실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기억하지 않는 후세들에게 그들이 가질 억하심사를 차마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붙들린 부채의식이 이 책의 자산이자 그 천기를 엿본 필자가 치르는 죗값일 것이다.

몇 해 전 ‘그린 북(Green Book)’이란 영화가 국내에서 개봉된 바 있다. 1960년대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돈 셜리와 그의 운전사 토니 발레롱가가 떠난 8주간의 미국 남부 투어를 담아낸 실화다.

그 ‘그린 북’과 이 책 ‘우리 근대의 루저들’의 쓰임이 흡사하다고 생각한 것은 우리 근대소설을 독자들에게 알리고픈 마음이 과분해서다.

‘그린 북’은 그 자체로 차별의 상징이면서 사회적 소수자에겐 필수품이었다. 하지만 ‘우리 근대의 루저들’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책자일 리 만무하다. 반드시 읽어야 할 책자는 더더욱 아니다.

이 엄연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한국의 근대소설이 한 세기 전 보내온 메시지를 오늘의 독자 제위에 기필코 전하리라는 오랜 다짐을 떨쳐낼 수 없었기에 부득불 이 책의 출간을 결심했다.

염상섭은 한국전쟁의 와중에 장편소설 ‘취우(驟雨)’(1953)를 신문에 연재했다. ‘취우’는 노자 ‘도덕경’의 한 구절, ‘사나운 바람은 아침 내내 부는 일이 없고, 소나기는 종일 오는 일이 없다(故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에서 가져온 제목이다.

염상섭은 이 작품의 연재에 앞서, ‘길 이편에서는 소낙비가 쏟아지는데 마주 뵈는 건너편에서는 햇살이 쨍이 비추는 것을 눈이 부시게 바라보는 듯한 그런 느낌이다’라는 말로 자신이 겪은 미증유의 전쟁에 대한 소회를 피력했다.

환란이 2019년 우리에게 닥쳤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난이 될지도 모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역병이 창궐한 것이다. 한때의 소나기라 하기엔 그 기세가 날로 극악해지고 있다.

그러나 염상섭의 말처럼 삶은 계속되고, 이 시간은 언젠가 지나간 미래가 될 것이다. 저자는 그날에 닿기까지 ‘취우’와 같은 과거의 소설을 읽는 일이 우리에게 정신의 면역력을 줄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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