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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원 화백의 새로운 화폭 세상
오준원 화백의 새로운 화폭 세상
  • 정 상 편집위원
  • 승인 2010.10.23 1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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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준원 화백의 화폭에는 자신의 혼이 녹아 있다. 그가 화폭에 짓는 빛과 색은 그것으로부터 나온다. 색의 마술사라는 정평답게 그의 화폭에는 빛이 앉아 색을 잣는다. 하지만 그 색은 결코 방만하지 않으며, 절제되어 있다. 따라서 그의 화폭은 화폭을 마주한 이에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다. 그의 화폭을 찬찬히 들려다 보면 들뜬 이의 마음조차 가라앉힌다. 한마디로 오준원의 화폭에는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 주는 색의 신비가 녹아 있다. 그렇다고 오준원 화백의 화폭에 그것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화폭에는 고요함과 함께 움직임 또한 함께 녹아들어 있어서 때론 보는 이로 하여금 격정을 일깨우기도 한다.

오준원의 화폭이 이처럼 빛으로, 색으로 농익을 수 있었던 것은 손에 붓을 든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곧 지난 43년 동안 오로지 빛을 쫓아 색을 찾는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전업 화가로서의 길을 변함없이 걸어온 오준원 화백, 나는 오준원 화백을 처음 만난 날을 십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서초동의 불 빛 흐름한 한 지하 다방에서였다. 동여 맨 긴 머리카락과 짙은 범눈썹, 첫 눈에도 그가 그림 그리는 화가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화폭의 세상 또한 나는 첫 눈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그의 첫 인상을 즉흥시로 표현해 주었다. 하도 오래 전 일이라 시의 제목조차 잊었다. 오 화백 역시 그 시의 제목을 잊었을 것이다.

오 화백과 나의 인연은 침으로 질긴 모양이다. 꽤 여러 해 동안 나는 오 화백을 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나는 내 옆에서 통화하는 이의 표정을 통해 그가 지금 오준원 화백과 통화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서 전화를 빼앗다시피 해서, 서슴치 않고 “오 화백이요” 했다. 아마 당시 비록 전화 수화기를 통해서 였지만, 내 목소릴 들은 오 화백은 정말 놀랐을 것이다. 그 일이 잇은 후 또 오랫동안 나는 오 화백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 인사동 골목을 걷던 중 그 곳에서 나는 다시 또 오 화백과 조우했다.

그 때 비로소 나는 또다시 오 화백의 화폭을 대했다. 10여 년 전에 이미 색의 마술사란 평을 듣고 있었지만, 내 눈 앞에 다시 나타난 그의 화폭이 간직한 빛과 색은 깊은 완숙 미와 함께 이제는 빛을 눌러 색을 표현하는 새로운 경지를 열고 있었다.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흐른 지금, 여의도에서 우리는 또 다시 만났다. 오준원 화백이 자신의 화폭을 들고 여의도에 나타난 것이다. 빛이 녹아 색이 된 오준원 화백의 새로운 그림세상, 이제 그 세상에 세계인이 빠져들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직감한다. 빛과 색의 조화, 안정된 구도, 절제된 붓놀림, 이제 오준원은 화폭에 자신과 자연, 그리고 우주의 마음까지 녹여 담아 자연 혼을 부르는, 보다 완전한 화폭의 새로운 세상을 연 것이다.

2010.10.23 / 정치경제평론가 시인 정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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