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량 변화 추이와 경기 전망
#1) 시장을 중시한다지만 정부의 경제에 대한 영향력은 나날이 확대되고 있다. 그 이유는 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정부의 비중이 그 만큼 크다는 의미다. 작년 말 기준 우리의 국내총생산(GDP)은 1조 달러, 약 1,000조원을 상회하는 수준이다. 한편 국민총지출 측면에서 보면 약 1,000조 원의 지출 중 약 300조원이 정부 부문의 지출이다. 이렇고 보면 정부만큼 시장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개별경제주체는 없다.
삼성그룹이 국내에서는 가장 규모 큰 대기업이지만 지출 측면에서 이 또한 정부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따라서 현대 자본주의 국가 대부분이 시장자율을 중시하는 등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지만 이는 유명무실에 불과하다. 이렇고 보면 큰 틀에서 경기를 조절할 수 있는 힘은 역시 정부에게 있으며, 정부는 통화량의 조절을 통해 경기를 조절해 나간다. 이 때 동원되는 기관이 중앙은행으로서 한국은행이다.
지난 해 10월을 전후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가시화 되자 정부 특히 한국은행은 통화확장정책을 통해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먼저 제고시킨 후 이들이 ‘소비자 대출(신용창조)’에 응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아래 표는 앞서 말한 내용을 담고 있다.
■ 2008년 4분기 및 2009.1.2.3,4,5월의 유동성 지표(단위, 조원)
구분 |
2008.10 |
2008.11 |
2008.12 |
2009.1 |
2009.2 |
2009.3 |
2009.4 |
2009.5 |
본원통화(말잔) |
53 |
58 |
65 |
63.4 |
70.5 |
71.7 |
59.7 |
59.9 |
증가율(전월대비) |
|
9.4% |
12.0% |
-2.4% |
11.1% |
1.7% |
-16.7% |
0.3% |
M2(광의통화, 말잔) |
1.411 |
1.428 |
1.426 |
1,440 |
1,457 |
1,470 |
1,482 |
1,491 |
증가율(전월 대비) |
|
1.2% |
-0.1% |
-0.9% |
1.1% |
0.8% |
0.8% |
0.6% |
통화승수 |
26.49 |
24.43 |
21.99 |
22.71 |
20.66 |
20.50 |
24.82 |
24.89 |
(자료추출, 한국은행 금융지표)
#2) 위 표는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지표에서 추출한 본원통화(말잔) 및 광의통화(M2, 말잔), 그리고 각각의 전월 대비 증감율을 나타낸다. 표의 제일 밑단에 위치한 통화승수는 광의통화를 본원통화로 나눈 수치로 은행 신용창조의 수준을 보여준다. 사실 은행의 신용창조는 통상 (1-지준율)×본원통화/지준율로 나타낼 수 있다.
예를 들어 2009년 5월의 본원통화가 59.9조원이고, 현재의 지준율이 3.5%라는 점을 고려해, 이 때 시중은행이 창조할 수 있는 신용(부채)총액은 다음과 같이 계산된다. 즉 2009년 5월 시중은행의 총 신용창조 가능 액은 (1-3.5%)×59.9조원/3.5%=1651.5조원이다.
그런데 위 표에서 2009년 5월, 실제로 창조된 신용은 1.491조원이다. 따라서 2009년 5월 시중은행은 신용창조가 가능한 최대금액의 약 90%에 해당하는 만큼만 신용을 창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2009년 5월 현재 총 통화량은 59.9(본원통화)조원에다가 1.491(신용)조원을 더한 1550.9조원이다.
이 외에도 우리가 이 표에서 눈여겨 볼 것이 있다. 바로 전달에 비해 본원통화가 크게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광의통화는 오히려 감소했다거나, 아니면 본원통화 증가율이 전 달에 비해 마이너스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광의통화 증가율이 플러스를 가록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가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시중은행의 건전성 문제다. 즉 본원통화가 전 달에 비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광의통화가 증가하지 않은 것은, 즉 시중은행이 신용을 창조하지 못하는 것은 은행자체의 건전성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앞서 말한 은행의 신용창조는 대출을 통해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서 본원통화가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광의통화가 늘지 않았다는 것은 곧 은행이 자체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출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 즉 신용창조에 나서지 않았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반면에 본원통화가 전달에 비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광의통화가 증가한 것은 은행이 은행 채를 발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추가적으로 자금을 확보해 적극 대출에 나섰다는 뜻, 즉 신용창조를 확대했다는 의미다.
이런 점에 유의해 위 표를 잘 살피면 2009년 2월 이후 시중은행의 태도가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금융위기 발생 이후 건전성 확보에 주력했던 은행들이 2009년 2월에 들어서 비로소 소비자 대출에 적극 나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금융위기 발생과 함께 한은이 본원통화를 크게 늘렸지만 시중은행은 늘어난 본원통화량으로 신용창조, 즉 대출에 나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건전성 확보에 모두 투여했다는 것을 이 표는 보여 주고 있다.
이 외에도 이 표에서 우리가 하나 유의해 볼 것이 있다. 즉 위 표에서 보듯이 한은이 본원통화를 늘린다고 하여 시중의 통화량 또 한 반드시 늘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통상 시중의 통화량은 한은의 본원통화를 기반으로 하지만 이를 기초로 시중은행이 얼마만큼 신용을 창조하느냐에 따라서 그 크기가 최종 결정된다.
즉 통화량은 (한은의) 본원통화+(은행의)신용창조의 크기로 최종 결정된다. 이 크기를 나타내는 것이 위 표의 맨 하단의 ‘통화승수’이다.
위 표를 통해 우리가 한 가지를 더 읽는 다면 한은이 2009년 5월을 기해 본원통화를 크게 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가 막 시작되고 있지만 한은은 본원통화의 크기를 지난 5월 이미 위기 이전 수준으로 되돌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한은이 이 같은 조치를 취한 배경은 시중은행의 건전성이 지난 5월 이후 어느 정도 확보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통화승수의 크기에서 나타난다. 실제로 지난 5월을 기점으로 통화승수 또한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은행의 신용창조 여력이 그 만큼 확대되었다는 의미다. 시중은행의 신용창조 여력은 곧 시중은행의 건전성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3) 물론 지난 5월 이후 한은이 통화정책을 어떻게 전개했는지는 그 여부는 위 표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의 주가 동향이나 기타 주택가격 동향 등을 고려할 때 한은의 통화확장 정책은 6월을 기해 다시 돌아선 것이 아닌가한다.
그러나 현실의 경제여건 즉 큰 폭의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6월 이상 계속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로 인해 통화량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즉 한은이 나서서 굳이 본원통화를 늘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한 것처럼 자산가격이 상승한 것은 은행 등 민간부문의 능력이 그 만큼 확대되었다는 뜻이다. 우리 경제의 V자 회복을 예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