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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국민을 저 토록 사랑하는가.
미국은 국민을 저 토록 사랑하는가.
  • 정 상 편집위원
  • 승인 2009.08.06 1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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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에 억류 중이었던 미국 국적의 두 여 기자 석방을 위한 미국의 국가적 행동은 우리 모두로 하여금 ‘과연 미국답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두 여기자 억류로부터 석방에 이르기까지 그 동안 미국의 국가적 행동에는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어 보인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에 머문 것은, 비록 1박 2일이지만(지난 5일 10시 40분경으로부터 6일 오전 8시에 이르는 기간, 한국시간) 시간상으로는 채 20시간도 되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에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자신의 과업을 달성하고, 두 여기자와 함께 평양을 출발, 미국에 도착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비록 총을 들지는 않았지만 전사로서 마치 특공부대원이 임무를 수행하듯 두 명의 여기자를 평양으로부터 구출해 낸 것이다.

이번 일은 한 마디로 놀랍다. 이 같이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미국이라는 국가의 철저함, 즉 자국 국민에 대한 국가의 철저한 보호의식 때문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을 한결같이 미국답게 하는 것은 바로 ‘미국이라는 국가의 자국 국민에 대한 전폭적 지지와 사랑’이다. ‘신의 계시’와도 같은 ‘국민에 대한 국가의 헌신, 이것이 다인종 국가 미국을 유지하는 힘의 원천인 셈이다.

이 같은 국가의 헌신’에 대해 미국 국민 역시 국가를 위한 일이라면 언제든지 자신 또한 희생해도 좋다고 믿는다. 이 처럼 미 국민의 애국주의는, 조금 지나치게 표현하면,  마치 종교적이다. 앞서 말한 미국의 애국주의는, 짧은 독립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치른 수많은 전쟁을 통해 탄생하는 전쟁 영웅에 대한 국가적/ 국민적 존경심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나한다.

그리고 이런 미국의 애국주의는 미국 사회 전 부문으로 확산되어 있고, 이것이 인종적 갈등을 넘어 전 국민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고 있다.

#2) 지난 3월, 북․중 접경지역을 취재하다가 북한 당국에 의해 전격 체포되어 재판까지 받았던 미국 커런트 T.V 소속의 두 여 기자, 유나 리(36세)와 로라 링(32세)이 북한 억류 141일 만에 극적으로 가족과 조국인 미국의 품으로 돌아갔다.

미국 도착 소회에서 두 여기자는 ‘(북한에서)클린턴 전 대통령을 보는 순간 악몽이 끝났음을 직감했고, 조국으로 돌아 갈 수 있다는 희망에 가슴 벅찼다’고 술회하고, ‘클린턴 전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 그리고 정보당국과 미 국민에게 감사한다’며 감격과 환희의 눈물을 흘렸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미 정부는 북한이 두 명의 미국 여기자를 석방한 데 대해 커다란 안도를 느낀다”며, “오늘 두 여 기자의 귀환은 당사자 가족뿐만 아니라 전 미국인의 행복”이라며, 두 여기자의 귀환을 크게 환영했다.

#3) 지금 한국은 과연 어떤가? 국가는 과연 국민에게 헌신하고 있는가? 그리고 국민은 또 국가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 각오가 서 있는가? 지금 한국은 국가와 국민이 오히려 강력한 대결구도, 곧 전선을 구축하고 있는 듯 마치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지 못해 안달하는 듯 하다. 쌍용차 사태를 봐도 그렇고, 지난 번 용산 참사를 봐도 그렇다.

이와 더불어 지금 한국사회는 ‘영웅’을 수용하지 못하는 졸렬함 속에 있다. 물질주의에 탐닉하는 사회적 경향은 비록 영웅이 탄생하더라도 이내 이들을 물질 속에 파묻어 버린다.

수영의 박태환 선수가 그렇고, 피겨의 여왕 김연아 선 수 또한 마찬가지다. 광고에 등장하는 김연아 선수를 보고 다들 예쁘다고는 말할지 모르나 그녀를 영웅시까지 할 국민은 아예 없다. 즉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그녀는 기예 인으로 성공한 국민 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따라서 그녀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한 그녀는 우리사회의 영웅으로 남을 수 없다. 더불어 국민으로부터 존경 또한 받지 못할 것이 뻔하다.

이런 한국사회에 애국심이 기능할 리 없다. 애국심이 기능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는 영웅 또한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영웅이 존재할 수 없는 사회, 이 얼마나 비겁한 사회이며, 졸렬한 사회인가? 대통령이 존경 받지 못하는 것 역시 우리사회의 이러한 경향과 깊이 연계 되어 있다.

필부(匹夫)는 ‘영웅’의 상징성과 존경심, 그리고 그것이 주는 용기에 기대어 현재의 좌절을 극복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사회 내부에는 좌절에 빠진 국민으로 하여금 희망을 갖도록 하는 매신저 즉 영웅이 없다.

모든 것이 물질과 연계되어 고귀한 우리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영웅주의, 곧 애국심조차 한 순간 허물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 결과 남은 것이 허울과 위선이다. 사회 내부의 이런 현상은 결과적으로 국가가 국민에 대해 헌신할 의사를 전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은 국가우월주의가 지나치게 팽배해져 있다. 이것은 공직사회의 모습으로 발현되며, 공권력을 집행하는 기관의 우월주의로 나타난다. 이런 공권력 우월주의와 물질주의가 연계되어 현재의 사회상을 증폭시키고 있다. 국가는 이 점을 바로 잡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

#4) 미국은 저토록 국민을 사랑하는 데, 한국은 과연 어떤가? 국가우월주의가 국민을 짓밟고 있지는 않는가? 냉정히 돌아보아야 하며, 국가가 국민에게 헌신할 때, 영웅의 탄생과 함께 애국심 또한 살아나기 마련이다.

200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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