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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정말 위독한가.
김대중 전 대통령, 정말 위독한가.
  • 정 상 편집위원
  • 승인 2009.08.10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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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말 위독한가 보다. 천년만년 살 것 같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열 증세로 병원에 입원 한지 벌 써 이십 여일 하고도 9일 째, 그 사이 폐색전(肺塞栓)증으로 인한 호흡부전증까지 나타나 기관지 절개 수술까지 받았다한다. 이로써 김대중 전 대통령은, 더군다나 의료진의 설명대로라면 현재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약물에 의지해 혈압과 맥박을 정상치로 유지하고 있다하니, 분명 생사의 귀로에 서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분명 우리 모두에게 안타깝고 (할일이 아직 남았다는 점에서) 억울한 일이다. 하지만 정연한 세상의 이치만은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

아무튼 나 같은 소시민에게도 그의 정치인생은 큰 의미로 다가선다. 그야말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군사독재와의 정치투쟁에 일생을 바쳤던 사람, 그리고 영욕의 정치인생을 넘나드는 인고의 세월 끝에 끝내 이 땅의 대통령이 되어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했던 정치지도자였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아마 그가 우리사회에 끼친 영향의 내용을 일일이 다 정리하자면 몇 날이 걸릴지 헤일 수도 없거니와 설령 그렇게 한다하더라도 우리는 그 내용을 결코 말과 글로 다할 수 없다. 그런 그조차 그 인고(忍苦)와 영욕(榮辱)의 세월을 뒤로 한 채, 이제 곧 우리들 곁을 영영 떠날 수도 있다한다. 이 같은 생각에 이르자 새삼스럽게 이 땅의 역사와 정치, 그리고 삶의 무상함이 잠시 내 어깨를 짓누른다.

하지만 우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선인(善人)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그를 필부(匹夫)나 범부(凡夫)로 규정하는 것은 아예 예의에도 어긋나다. 그는 분명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이 땅의 위대한 정치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며, 또한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닌 강단과 용기를 지닌 ‘위대한 인간’이었다. 특히 그가 정치인으로서 이처럼 위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정치인생에 신의 계시와도 같은 아주 분명한 목표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에게 그것은 목표 이상의 것으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절대적 사명(使命)이다.

우리가 그의 정치역정을 애써 굳이 살피지 않아도 앞서 말한 그의 절대적 사명은 우리의 뇌리에 보다 선명하게 남았다. 즉 그에게 주어진 첫 번째 절대적 사명은 이 땅에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보다 굳건하게 정착시키는 일이었으며, 두 번째 것은 바로 남북분단 상황의 종식을 통해 통일의 대업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대에 함께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영예로울 뿐만 아니라 또한 행복하다고 하겠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그와 함께 한 공간에서 숨쉬며 그에게 주어진 절대적 사명을 향해 그가 전진해 나가는 전 과정을 지난 40여 년 내내 적나라하게 지켜보았다. 우리가 지켜 본 그의 인생은 비록 굴곡은 졌지만, 그 자체로 한편의 대 서사시(敍事詩)다. 이제 곧 우리는 위대한 한 인간이 창조한 정치인생을 담은 대서사시, 곧 한편의 거대한 정치 드라마를 역사에 아로새겨야만 할 것 같다. 이로써 우리는 이미 더 이상 위대한 정치드라마를 볼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다. 이처럼 안타까운 시간이 점차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가 몸으로 써가던 대서사시가 끝내 마침표만을 남긴 채 종장에까지 다다랐다. 거듭거듭 말하지만 그 역시 끝내 자신에게 주어진 정치적 과업 모두를 이룩하지 못한 채, 자신이 직접 쓰고 연출한 대서사시, 곧 정치드라마를 종영하려 하고 있다. 즉 그는 이제 우리들 곁을 영영 떠나 영원히 정치화석으로만 남아야 할 약속의 시간을 앞두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우리 국민들 중 상당수는 그의 정치적 신념에 대해 어떤 확신을 갖지 못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이 땅의 정치구조 즉 정파적 대립 각이 짓는 몸짓으로부터 온 것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하여 그것에 대한 책임에서 전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 또한 바로 그 자신이다. 즉 우리는 그 자신이 스스로 추구하던 정치적 목표로부터의 한순간 이탈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가 보인 일탈적 행동 곧 정치자금 관련 행위들이다. 여기에는 현실적 모순점들을 담고 있다. 이로써 그는 한 때 스스로 신뢰의 위기 속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지엽적 문제이며, 그는 분명 일반 국민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위대한 정치인이었다. 확실히 그는 자유민주주의의 정착과 민족통일이라는 대업을 완수하기 위한 정치적 행동을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했다.

그러나 우리 국민 모두가 깊은 그의 속뜻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는 그를 한 때 사상적으로 의심하기도 하고, 급기야 불신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일부 정치평론가는 그 같은 불신의 벽을 그 스스로 허물어 깨치고 떠나시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 모든 것을 놓고 떠나야 할 운명의 시간과 다툼을 벌이는 중이다. 나는 이 운명과의 싸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반드시 이기고 우리들 곁으로 다시 돌아왔으면 한다. 그리고 그가 평소 이루고자 했던 마지막 소원인 통일의 대업이 이루어 지는 것을 보고 떠났으면 한다.

 통일의 대업

이 땅 이 민족의 통일을 생전에 반드시 보고자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 좌와 우를 떠나 민족통일이라는 대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북측의 주장을 수용하고자 했던, 물론 그 같은 생각 너머에는 분명히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최종 승리하라는 어떤 확신 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북측이 주장했던 고려연방제 통일안마저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이름으로 기꺼이 수용하려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이처럼 그의 통일에 대한 집념은 대단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그 같은 통일에 대한 집념을 이해하려하기보다는 북한 공산집단에 우호적인 것으로 폄훼했다.

이처럼 지금까지 우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편향적 시각을 견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위 그를 좌파 혹은 빨갱이로 보는 시각이 가장 대표적이다. 과연 그가 공산주의자이며, 빨갱이인가? 아니다. 그는 분명 자유주의자이며, 민권과 인권을 중시한 인도주의자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정파적 입장에서 그의 말을 해석하려 했고, 그의 정치적 행동을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큰 행동 너머에는 분명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큰 확신 같은 것이 있었다. 일반 국민은 그런 그를 이해하기가 좀 채 쉽지 않았다. 즉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 매우 쉬운 일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실 많은 이들은 스스로 그 이해를 꼬이게도 하고, 또는 일부러 어렵게도 만든다. 이처럼 인간은 특정사안을 자신의 관점에서 보고 이를 묘하게 애써 비틀어 오히려 그 이해에서 비켜나고 싶어 하는 충동을 갖기 쉽다. 어쩌면 그러한 충동은 시기심 혹은 질투심 등의 형태로 우리 스스로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가두어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같은 못된 습성에 정파적 이해까지 더하면, 우리는 한 치 앞의 미래조차 보지 못한다. 우리는 자칫 스스로를 이렇게 편향된 생각 속에 가둔다. 이 과정에 생성되는 것이 고점관념이다. 고정관념은 인간을 정형의 틀에 가둔다.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이런 정형의 틀에 갇혀 있었다. 이 틀을 깨어내면 그 때 비로소 우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십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의 세월에 담긴 의미로서 삶에는 영욕보다는 통일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신념 같은 것이 자리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리고 그 속에는 그 자신에 대한 확신 같은 것이 내재되어 있었다. 만일 이런 확신이 없었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6월 남북 정상 회담에 나설 수 없었다. 그랬다면 6.15 남북한 공동 선언 또한 이끌어 내지 못했다. 그가 그 같은 선언을 이끌어 낸 데에는 바로 앞서 말한 우리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보다 확고히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그 분의 그 같은 확신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종했던 정치세력들조차 앞서 말한 그의 확신을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 모든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신념에 기초해 정치행동을 전개했다. 비록 그 길이 길고 지루했지만, 그는 끝내 성공했다. 이 결과 이 땅에 독재라는 악이 추방되었다. 이 결과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이와 함께 자신이 꿈꾸던 남북관계를 새로이 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실제로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남북정상 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했고, 급기야 2000년 6월 대통령이 된지 3년 만에 그토록 염원했던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 때, 엄청난 자금을 북한에 제공했으며, 그 대가로 남북한은 그 동안의 긴장과 대결관계를 청산하고, 상호 화해와 협력이라는 새 길을 열었다. 급기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 공로를 세계로부터 인정받아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앞서 말한 대로 그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금 위독하다. 정녕 삶이란 덧없는 것일까? 자신의 정치인생을 위해 그 모든 것을 마다하지 않고, 투ㅡ혼을 불살랐던, 작지만 위대한 인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곧 나설 모양이다. 이제 우리는 그를 놓을 수밖에 없다. 이 마당에 우리가 그 동안 그에게 가졌던 편견을 모두 털어내자. 그리고 그 동안 우리사회가 혹은 우리가 그에게 뒤집어 씌웠던 것이 있다면, 이제는 그것을 모두 털자. 그리고 화해와 용서를 통해 하나가 되자.

그 분이 새로운 길에 나서는 마당까지 빨갱이, 혹은 공산주의자로 보낼 수는 없다. 평소 소신 너머에 자리하고 있었을 그 분의 큰 세상을 우리 모두 바로보자. 정파라는 이해관계를 청산해야만 비로소 보이는 그분의 위대한 자유주의 정신, 그 정신을 우리 모두 계승하자. 이를 위해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다시 일어나 자유주의 만세, 위대한 대한민국 만세를 외쳐 주었으면 한다. 그는 분명 자유를 진정 사랑한 이 땅의 진정한 투사로서 자유주의자였다.

앞으로 누가 있어서 그분의 위대한 생각을 우리에게 전수 하겠는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시여! 부디 일어나시어 나는 위대한 자유주의자였노라고 외쳐주시라. 그리고 통일대업이 이루어지길 소원한다고 기도하시라. 꼭 이제 우리들 곁을 떠나야 한다면 이 땅 미 민족의 위대한 자유, 영원한 자유를 위해서 그렇게 외쳐주시라. 아무튼 정녕 그가 떠난다면 그 떠난 그 빈자리가 무엇으로 채워질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위독하다.

2009.8.9 시인 정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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