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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와 사람이 낯설다.
거리와 사람이 낯설다.
  • 정 상 편집위원
  • 승인 2009.08.23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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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스로 선택한 일이지만 글에 갇히고 생각에 갇혀서 사회와 단절된 삶을 산지도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겼다. 자주는 아니어도 간혹 나를 찾던 이들(이들은 모두 내게 익숙한 이들이다)을 제외하면, 나는 그 동안 영 사람조차 만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외출조차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간혹 바깥출입을 하더라도 그 시간대가 주로 밤이다 보니 낮에 사람을 만나는 것과는 또 다르다. 만나는 사람도 다르거니와 대화의 내용 또한 달라진다. 어느 때 만나는가에 따라 만나는 사람과 함께 저들의 얼굴조차 달라진다. 즉 밤에 만나는 이들은 불빛에 가려진 얼굴을 보는 것이 고작이다. 불빛에 가려진 얼굴과 햇볕에 드러난 얼굴은 분명 서로 다르다. 더군다나 여성의 경우 얼굴에 화장기까지 덧씌우다보니 더더욱 달라진다.

오늘 모처럼 환한 대낮에 종로를 찾았다. 나는 발걸음을 옮기며 연신 기웃기웃한다. 거리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거리를 구성하고 있는 내용과 지나가는 이들의 모습이 과거와는 사뭇 딴판이다. 특히 종로거리를 다니는 사람의 모습이 예전과는 영 딴판이다. 그래서 지나가는 이들의 얼굴을 유독 세심히 바라보게 된다. 얼굴색이며, 얼굴을 지키고 앉은 눈, 코, 귀, 입, 입매, 이마 등을 하나도 노치지 않으려고 정말 집중해서 저들을 관찰했다. 그러자니 조심스럽다. 사실 지나가는 이들의 얼굴을 빤히 처다 보는 것은 결례이기도 하거니와 여성의 경우 잘 못 처다 보았다가는 자칫 큰 오해를 부를 수도 있다.
하기야 제 아무리 여성이라고 한들 ‘그저 처다 보는 것을 이유로 성추행이다’며 시비까지 걸어오기야 하겠느냐만 사람의 일이라는 것이 늘 생각하지 않은 방향으로 튀는 경향이 종종 있다. 따라서 우리 모두 매사에 행동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국 나는 곁눈질로 거리를 오가는 이들을 한참 동안 주시하며, 그들의 얼굴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다들 예전에 보던 모습들이 아니다. 굳이 이방인이 아니어도 급기야 낮까지 설어 곁눈질하는 내가 오히려 더 서먹서먹해지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거리를 오가는 이들 중엔 외국인도 자주 눈에 많이 띤다. 외국인도 어느 특정 지역의 외국인만이 아니다. 전 세계인의 모습을 거의 다 볼 수 있는 지경이다. 사람과 함께 거리의 모습조차도 예전과는 영 딴판이다. 군데군데 외국상표의 커피 가계가 자리한 것도 그렇고, 거리에 나 붙은 광고전단 역시 매한가지다. 과거의 경우 광고전단이라고 해봤자 하숙생 구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젠 각종 공연을 중심으로 하는 광고전단과 함께 새로운 내용의 수많은 광고전단이 길거리에 뿌려진다. 이런 거리풍경은 우리사회가 이미 다문화 사회에 진입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이제 한국이라 하여, 예전의 한국이 아니다. 즉 외국인이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보이던 시대는 구시대로 자리매김 된 셈이다. 이러니 거리의 사람들 모습이 낮 설 수밖에 없다. 이처럼 지난 10년 사이 한국 사회자체가 크게 변했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한국사회를 변화시킨 것은 한국의 힘이다. 소위 2,000년대 초 몰아치기 시작한 한류 열풍이 현재의 한국사회를 창조한 원천인 셈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의 젊은이들이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누볐다. 이로써 우리 문화의 역량도 엄청나게 신장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불러들이는 외국문화 역시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지금 한국은 그야말로 지난 80년대에 추동하기 시작한 세계화의 물결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다가 IT기술혁명과 IT문화가 정착되면서 우리의 생활의 양태 또한 크게 변모했다. 거리에 나선 모든 이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린 것은 두말 할 것 없고, 방송과 통신의 융합으로 창조되는 새로운 디지털 세상이 열리고 있다. 이런 세상에 사는 이와 과거 10여 년 전 사회에 살 던 이가 모습이 같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비단 변한 것은 사회뿐만이 아니다. 지난 10년 사이 내 모습도 참으로 많이 변했다. 어쩌면 저들 눈에는 내가 더 이상해 보 일지도 모르겠다. 저들이 내게 낮선 것이 아니라 내가 저들 눈에 오히려 낮선 셈이다. 이제 사회를 움직이는 추동력은 바로 저들에게서 나온다. 자연히 골방에 갇혀 글과 씨름하는 이가 창조하던 은둔문화의 지배력은 그 만큼 약해졌다. 이제 모든 것이 속도와의 전쟁을 수행 중이라 할 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다. 자연히 세상을 움직이는 문화 또한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다.

이 같은 사회변화의 물결에 올라타지 못한 이는 곧 바로 퇴보할 수밖에 없다. 퇴보가 계속되면 종래 퇴출이 기다리고 있다. 이 퇴출이 많은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도 하지만 통상 그 전단계로 경제적 고통을 수반한다. 이는 과거와는 달리 사회가 발전하면서 사회자체가 고비용을 수반하는 구조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고비용구조의 사회는 모든 이에게서 어떤 형태이든지 간에 반드시 노동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가장 한명이 전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시기가 있었지만, 이제 사회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사회의 이런 경향은 사회가 발전할수록 점차 강화된다. 즉 우리의 국민소득이 4만 불대에 이르면 우리 모두 먹고 사는 문제만큼은 전혀 걱정 없을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그 때가 되면 사회문화 자체의 질은 크게 개선되겠지만, 그것을 누리고자 하는 개인에게 엄청난 비용을 부가한다. 즉 사회문화 자체의 질이 더 나아졌다고 하여 개인 삶의 질까지 함께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여기서 하나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사회가 발전한다고 하여 그 속의 개인 또한 반드시 함께 발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사회발전의 연원을 따져들면 그 연원에 반드시 개인의 노력이 존재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회는 그 조직 자체의 힘에 의해 스스로 진화하기 시작한다. 이 때 개인과 사회는 별개로 존재하게 된다. 이 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하나 적시한다.

지난 2007 대선 기간 동안 수많은 사조직이 탄생했고, 이 조직을 통해 수많은 개인이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대선 이후 이들은 자신들의 사조직을 공조직으로 전환하기 위해 마음먹고, 조직원들로부터 일정액의 비용을 갹출해 조직력이 보다 강화된 새로운 공조직을 탄생시켰다고 하자. 이 공조직을 탄생시키는 데에 구성원 모두가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들 모두 일정액의 비용을 부담했기 때문이다. 이후 이 공조직이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등 나날이 성장해가고 있다고 치자.
이 때 이 공조직 속의 모든 개인 또한 이 공조직과 함께 성장하는가? 그렇지 않다. 비록 이 공조직을 형성하는 데에 기여는 했지만 이후 이 공조직의 발전과 그 구성원 간의 관련성이 점차 약해지기 마련이다. 사회 역시 마찬가지인 셈이다. 발전 요건을 갖춘 사회 자체가 진화를 통해 발전해 나가지만, 그 속의 개인은 오히려 퇴보하는 등 급기야 사회로부터 퇴출당하기까지 한다. 이로써 우리가 도달하는 결론은 사회발전과 개인발전 간의 상관도는 매우 밀접한 것 같지만 실은 전혀 무관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정치적 역량을 제외하면 기타 부문에서는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추동력을 갖췄다. 이를 말하듯 한국사회는 이 추동력을 바탕으로 자고나면 그 모습이 바뀔 정도로 나날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 변화에 오르지 못한 개인은 앞서 말한 대로 퇴보를 거듭하다가 종래 사회로부터 퇴출당한다. 결국 글과 생각에 갇혀 진화하는 사회경향에 편승하지 못한 나 역시 지금 이 순간에도 퇴보와 맞닥뜨려 있다. 이 결과 내게 사회와 사람 모두 낯 설 수밖에 없다. 모처럼 나선 종로 거리는 내게 충격적이며, 심각한 정도의 새로운 고민을 안겼다. 바로 내가 자칫 사회로부터 퇴출당할 수도 있다는 일말의 불안감이 그것이다. 종로 거리에서 사람이 낯설다는 것, 그것은 곧 내 스스로가 우리사회의 발전정도에 옳게 편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더군다나 올해 들어 지난 10년 우리사회의 진화를 추동시킨 두 사람, 곧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석 달여 시차를 두고 모두 운명했다. 오늘은 지난 18일 영면에 드신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영결식이 있는 날이다. 오후 두시 이후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시신조차 땅속 영겁의 세계 속에 영구히 묻힌다. 국민이 제 아무리 불쌍해도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립현충원 대통령 묘역(고 이승만 초대 대통령 묘역과 고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사이, 약 500평반미터)’에 묻힌 채 국민들 곁으로 결코 되돌아오지 못한다. 어찌되었든 두 전직 대통령, 즉 노무현과 김대중은 사회정의를 강조함과 동시에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 무진 애를 썼고, 관련 정책 또한 많이 정착시켰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소 “왕조국가는 가난한 백성을 구하지 못하지만, 민주주의 국가는 가난한 국민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이, 물론 이는 김대중 던 대통령이 본심과 함께 진정성을 담아 한 말이지만, 내게는 정치적으로 들릴 뿐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비록 현 정부 역시 친 서민 행보를 강화하는 등 가난한 국민을 구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지만, 국가의 역량을 고려할 때 이 말은 이후 상당기간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설령 그 말이 정치적 경향으로부터 벗어난다하더라도 국가가 국민의 가난을 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세계사의 흐름이 이를 입증한다. 현재 일인당 국민소득이 4만불대에 이르는 국가들, 즉 미국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독이르 일본 등 소위 선진국라고 하여 그들 나라에 가난한 국민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일본만 하더라도 거리에는 노숙자가 가득하지 않은가?

거듭 말하지만 내게 종로거리와 함께 그곳에 나선 이들이 낯설다는 것은 곧 내가 현재의 우리사회의 반화 경향에조차 편승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는 내가 우리사회로부터 퇴출될 수 있다는 강력한 반증이다. 내가 글과 생각에 갇힌 지난 10년, 우리사회는 이미 저만큼 나를 앞서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2009.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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