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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방문 소회, 청계천 물길에 손을 담그다.
청계천 방문 소회, 청계천 물길에 손을 담그다.
  • 정 상 편집위원
  • 승인 2009.08.24 0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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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위를 뒤덮었던 모든 콘크리트 장벽을 걷고, 물길을 복원 했다. 청계천은 평소 유량이 작아 천(川, 내)이었지만, 반만년을 이어 인근 지역 주민의 식수로서, 급기야 아낙들의 빨래터로 기능했을 터이다. 그러나 그런 청계천이 70년 대 초 공업화와 도시화의 바람을 타고 서울의 인구가 급증하자, 그들이 버리는 오폐수로 인해 청계천이 천의 구실을 하지 못하고, 악취를 풍기는 하수구로 전락하고 만다.

결국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청계천을 덮어 도로를 내고, 그 위에 고가도로까지 개설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서울에서 청계천은 자연 하수구로서 서울시민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말았다.
조선조 그곳을 건너기 위해 조성되었던 수표교, 광통교 등 많은 다리들 역시 청계천과 함께 묻히고 말았다. 그런 청계천이 복원 과정을 거처 다시 서울 시민들 앞에 웅장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않은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물은 많은 생명을 품는다. 자연히 하천 역시 수많은 종의 생물을 안고 그들만의 역사를 지어간다. 지금 청계천은 다시 역사를 짓고 있다. 아직은 인공의 티를 완전히 벗지 못했지만 이렇게 세월이 몇 년 만 더 흐르면 청계천은 자연하천이 되어 우리들 곁에 다가 설 것이다.

하기야 그 속내를 모르면 이미 청계천은 자연 천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사실 우리는 그 속내를 굳이 알 필요조차 이제는 없다. 그저 자연천이 짓는 천변 풍경과는 다르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역사가 되지 않았느냐.

지금 청계천 변에는 많은 시민들은 물론이고, 외국인 관광객까지 몰려들고 있다. 그들 모두 천변에서 물의 흐름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천변을 거닌다. 그러면서 다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혹자는 무비카메라를 들고 청계천 풍광을 촬영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청계천이 복원 된지 이제 겨우 이태가 지났지만 이미 청계천은 많은 생물을 품고 있다. 그리고 생명의 잔치가 열리는 이 곳으로 사람을 불러 모은다.

나는 그 동안 청계천을 찾지 않았다. 물론 차를 타고 가며 천변 풍경을 본적은 있지만, 천에 내려 물을 만지고,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 사이를 걸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나는 청계천에 내려 그 곳에 온 이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여 걷기도 하고, 급기야 그들 사이를 비집고 앞서 나가기도 하면서 삼일교에서 광통교까지 걸었다. 다시 뒤돌아 삼일교에 다다라 나는 물살을 받히며 앉아 있는 징검다리를 밟고, 그 위에 쪼그리고 앉아 천의 물살을 느끼려 손을 담갔다.
한 여름이라 물의 냉기는 덜하지만 저 지난 여름 동강 물에 손을 담그자 느껴지던 그 물맛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그렇다. 청계천의 물은 이제 인근 산을 발원으로 하지 않고, 한강이 곧 그 발원지다. 자연히 청계천의 발원은 저 강원도 영월, 태백 등지로 이어진다. 이로써 우리가 청계천에 발을 담그면, 비록 약간의 시차는 있지만, 이는 곧 저 동강에 발을 담근 것과 같다.

강원도 영월의 동강, 그 동강은 태고의 신비를 품어 역사가 된 강이다.

아래는 내가 2001년 여름 동강에 발 담그자 내 몸이 전율하며 토해낸 시다. 그 때 동강은 내게 역사의 강이자 아이들의 강이기도 했다.

동강(東 江)

태고(太古)의 숨결이 멎은 듯 / 초가집 지붕 위에 / 머무는 세월(細月)만큼이나 / 긴 역사(歷史)와 사랑과 감동(感動)을 안고 / 동강(東江)은 흐른다. / 억만겁(億 萬 劫) 흘러 뒤돌아 왔을 / 물길, 세월(歲月), 자연(自然). / 철없는 아이들만 / 저 홀로 동강(童江)이로다.
(2001년)

그렇다. 이미 저 영월의 동강이 아이들의 강이듯이 청계천 역시 아이들의 천이다. 비록 부모의 손을 잡긴 했지만 아이들 소리가 물소리와 어울려 짓는 살아있는 자연의 소리가 된다. 아이들이 있어야 서울의 문화, 역사가 재 창달되고, 또한 억 만 겁을 잇는다. 청계천이 아이를 부르고 모아 기르는 천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서울의 미래가 밝다.

우리는 그 동안 소중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몰랐다. 바로 청계천이 살아야 서울이 살아난다는 것 말이다. 오늘 청계천에 손을 담가 저 영월의 동강이 전하는 태고의 신비를 함께 느끼니, 600년 도읍의 그 긴 역사만큼 서울의 미래 또한 길고 장대하리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처럼 청계천은 서울을 살려 장대한 600년 도읍의 명예를 드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자자손손 아이를 불러 모아 성장시킴으로서 장구한 서울의 생명을 잇는 천으로 영원히 남아야 한다.

 청계천 방문 소회, 그것은 장구한 이 땅의 역사를 되 보는 것과 함께 우리의 아이들이 창조할 새천년 너머의 역사를 함께 보았다는 자랑스러움이다.

2009.8.22

역사를 되 살린 청계천에서

시인 정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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