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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시절] 우리마당 테러 사건, 범인은 누구?
[그때 그시절] 우리마당 테러 사건, 범인은 누구?
  • 이명훈 기자
  • 승인 2015.03.05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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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8월 17일 오전 4시께 재야문화운동단체인 우리마당(대표 김기종, 사진) 사무실에 20대 괴한 4명이 자물쇠를 부수고 침입해 못이 박힌 각목으로 청년문화부장 박 모씨를 피가 난자하도록 마구 때려 실신시켰다. 또 함께 있던 여자회원 최 모씨를 성폭행하고 달아났다.

당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위 '우리마당 테러 사건'이다. 우리마당은 82년초에 결성되어 주로 대학생을 대상으로 탈춤, 국악, 농악, 판화 등을 강습해왔다.  

박 씨의 진술에 의하면, 흰 운동화에 짧은 머리의 괴한들은 리더격으로 보이는 이의 지휘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박 씨는 이날 피습으로 머리에 7cm 정도의 깊은 상처를 입었다.

당시 평민당(총재 김대중)은 사건과 관련한 제보를 받고, 정보사령부 파견 부대장 이 모 준장의 지시로 정보사 우이동 지대장 박 모 소령의 지휘 아래 박 모 대위팀인 김 모 중사, 손 모 중사, 김 모 하사, 나 모 하사, 정 모 하사 등 5명의 하사관이 저질렀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렇지만 육군은 "제보내용을 자체 정밀 조사한 결과 군이 전혀 관계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와 더불어 "우리마당 피습사건에 안기부 차장이 총괄책임을 맡았다"는 시민의 제보와 관련해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는 "사실과 다르다"며 "우리마당 사건에 일체 개입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이후 경찰의 수사는 진척되지 않았다. 온갖 추측만 난무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강도 강간사건으로 위장한 듯 보여도, 그처럼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계획적인 이 같은 범죄가 지금까지도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반인들이 저지른 단순한 범죄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경찰이 그토록 철저한 수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범인의 흔적조차 찾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 방증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우리마당 습격 테러 사건에 대한 진상이 규명되지 못하자, 지난 2007년 김기종 대표는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중에 분신을 시도했다.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고 목숨을 겨우 부지한 김 대표는 몇 년 뒤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기자에게 당시 심신의 고통에 대해서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았다"고 표현했다.

2015년 현재, 김기종 대표는 미국 대사 테러자가 되었다. 그전에는 일본 대사 테러도 저질렀다. 그렇지만 그도, 의혹만 난무했지만 어쩌면 국가권력이 개입되었을지도 모르는, 극악무도한 테러의 피해자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채 잊혀져 갔던 '우리마당 테러 사건'은 피해자의 또 다른 테러 사건으로 인해 수면 위로 다시 급부상하고 있는 형국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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