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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 천재적 미술가·과학자
[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 천재적 미술가·과학자
  • 김진혁 작가
  • 승인 2023.11.24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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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작가]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천재적 미술가·과학자·기술자·사상가. 15세기 르네상스 미술은 그에 의해 완벽한 완성에 이르렀다고 평가받는다. 조각·건축·토목·수학·과학·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 재능을 보였다.

INTRO: 이탈리아 르네상스 대표 석학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석학(polymath)이다.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해부학자, 지리학자, 음악가였다.

2007년 11월에 네이처 지가 선정한 인류 역사를 바꾼 10명의 천재 중에 가장 창의적인 인물 1위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차지했다. 주요작품은 <모나리자>, <성 안나>, <최후의 만찬>

생애: 스승은 어린 레오나르도의 재능에 놀라 붓을 꺾고 조각에만 전념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 1519]는 피렌체 근교 빈치에서 출생하였다. 공증인 세르 피에로의 서자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카타리나(Catarina)라는 이름을 가진 농사꾼의 딸로, 신분의 차이로 아버지와 공식적인 혼인 관계를 맺지 못했다. 다 빈치가 태어날 당시 그의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결혼한 상태였다.

어릴 때부터 수학을 비롯한 여러 가지 학문을 배웠고, 음악에 재주가 뛰어났으며, 그림 그리기를 즐겨함. 1466년 피렌체로 가서 부친의 친구인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에게서 도제수업을 받았으며, 이곳에서 인체 해부학을 비롯한 자연현상의 예리한 관찰 및 묘사를 습득하여, 사실주의의 교양과 기교를 갖추게 되었다.

그의 예술적 특징은 정신적 내용의 객관적이고 사실적 표현기교의 구사이다. 15세기 르네상스 화가들의 사실기법을 집대성하여, 명암에 의한 입체감과 공간의 표현에 성공하였다. 그 후에 주관과 객관의 조화로 최고봉의 예술적 단계에 이름.

만년에 이르러 과학적 관심을 갖고, 수많은 소묘를 남겼다. 인체해부를 묘사한 그림들은 묘사는 의학발전에도 영향을 끼쳤다. 과학적 연구는 수학·물리·천문·식물·해부·지리·토목·기계 등 다방면에 이른다.

오늘날 우리가 자연과학으로 분류하는 해부학·기체역학·동물학 등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과학적인 천재성으로서 23권의 책을 남겼다. 1516년 프랑수아 1세의 초청으로 앙부아즈 궁에 기거하면서 <모나리자>를 완성한다.

그러나 말년에 가면 건강이 갈수록 악화되어 1519년 4월 23일 죽음을 직감한 그는 유언장을 작성하고 자신의 저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레오나르도는 독신으로 그가 자식처럼 아낀 제자 프란세스코 멜지에게 모든 재산을 상속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조각상./출처=픽사베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조각상./출처=픽사베이

업적: 위대한 예술가이면서 과학자

르네상스의 가장 훌륭한 업적은 원근법과 자연에의 과학적인 접근, 인간 신체의 해부학적 구조, 이에 따른 수학적 비율 등을 꼽는다. 그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생존했던 가장 경이로운 천재 중 하나다.

레오나르도는 미술뿐만 아니라 과학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쪽지 종이에 이런 저런 글과 스케치를 남겼다. 이 쪽지 종이에 깨알처럼 작은 글씨로 글을 적어 넣었다. 그가 쪽지 종이에 남긴 그림들 중에는 오늘날의 낙하산, 비행기, 전차, 잠수함, 증기기관, 습도계에 해당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때론 거울에 비춰보아야만 해독할 수 있도록 좌우를 바꾸어 쓰기도 했다. 레오나르도는 사람과 동물의 해부도를 평생 동안 끊임없이 그렸다. 당시 의학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그린 것보다 훨씬 더 세밀하고 훌륭한 그림들이었다.

그는 “화가는 해부학에 무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레오나르도는 “나이를 가리지 않고 남자와 여자의 시체를 30구 넘게 해부해 보았다.”

시체를 냉동시킬 방법도 방부제도 없던 그 시절, 그는 썩는 냄새를 참아가며 시체 한 구당 적어도 일주일 동안의 시간을 함께 보냈고 장기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스케치로 남겼다.

어떤 이는 <모나리자>의 저 신비로운 미소는 어쩌면 얼굴 표정과 관계된 안면 근육의 구조를 나타내려다 보니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조각·건축·토목·수학·과학·음악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재능을 보였다.

명언: 처음 한 걸음이 장차의 일을 결정한다

“잘 보낸 하루 끝에 행복한 잠을 청할 수 있듯이 한 생을 잘 산 후에는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 있다.”
“아는 것이 적으면 사랑하는 것도 적다”

에피소드: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허비했다.

#1. 다 빈치의 유서내용 “우리는 이따금씩 자연이 하늘의 기운을 퍼붓듯, 한 사람에게 엄청난 재능이 내리는 것을 본다. 이처럼 감당 못 할 초자연적인 은총이 한 사람에게 집중 되어서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과 예술적 재능을 고루 갖게 되는 일이 없지 않다. 그런 사람은 하는 일 조차 신성해서 뭇 사람들이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으니 오직 홀로 밝게 드러난다. 또 그가 내는 것들은 신이 손을 내밀어 지은 것과 같아서 도저히 인간의 손으로 만들었다고 보기 어렵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2. 어린 레오나르도는 다른 견습생들과 마찬가지로 바닥 청소나 잔심부름 같은 허드렛일 하면서 열심히 그림 실력을 키워나갔다. 어느 날 그는 스승과 함께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는 단지 스승이 그리다 만 그림의 귀퉁이에 천사들을 그려 넣었다. 스승은 어린 레오나르도의 재능에 놀라 붓을 꺾고 조각에만 전념했다. 훗날 레오나르도는 “스승을 능가하지 못하는 제자는 무능하다”라고 말했다.

#3. 레오나르도는 채식주의자였다. 부유층들이 기름진 음식과 진수성찬을 즐겨 먹던 그 시절, 그는 샐러드, 과일, 채소, 면 등을 즐겨 먹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쌀과 야채로 걸쭉하게 만든 수프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만의 건강관리 규칙을 쪽지 종이에 적어 놓기도 했다. “식탁을 떠나자마자 서 있고, 점심을 먹은 뒤에 바로 잠들지 마라. 술은 절제할 것이며, 자주 마시되 적게 마시고……화장실에 가는 일을 미루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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