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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
[리뷰]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
  • 박병우 기자
  • 승인 2017.12.08 0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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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보다 권력이라는 힘 앞에 무너져버린 순수에 관한 영화

[시사브리핑 박병우 기자]감히 말하건데 스크린으로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26년만에 정식으로 개봉된 故 에드워드 양 감독의 걸작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보이지 않는 시대의 힘 앞에서 무너져버린 순수에 대한 영화다.

네시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 동안 폭압적 분위기의 독재라는 시대상이 전해주는 무거운 공기와 어두운 대만의 거리, 파편처럼 흩어져 나가는 가족들과 친구들, 이런 과정을 담담하게 기록하듯 채워나가는 영상에 매료되게 된다 . 237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실화이다. 영화의 배경인 1959년 대만에서 벌어진 미성년자 살인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13살 샤오쓰(장첸)의 눈높이에서 대만의 현실을 바라본다.

공산당 정권을 피해 섬으로 도망친 대만인들은 현실은 늘 갇혀 있다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게 되는 것은 영화에서처럼 소년들만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상과 자유를 통제당하던 소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속에서 순응하며 살아가거나 청소년들로 이뤄진 조직에 가입하거나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에  그저 열광하면 되는 것 였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대만의 역사를 모른다면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역사적인 배경이나 지식보다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영화기도 하다. 어둡고 짙게 드리운 폭력에 대한 무력감은 상대적인 지식없이도 가슴으로 온전히 전해져 온다.

한없이 희망적이고 밝아야 할 13살 샤오쓰의 여름은 화려한 햇살과 같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았다. 인생은 무심하게도 그렇게 가볍지도 않았고 바라는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뿐이다. 어두운 대만 근현대사의 단면을 통해 영화는 무심하고 서늘하게 느껴진다. 

 

어린 샤오쓰는 아버지의 삶을 따라 지식을 습득하고 그 세계를 동경하지만 시대의 분위기에 따라 지식은  점점 더 무기력해져만 가고 삶은 피폭되어 간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지식보다는 권력이 사회를 주도하게 되었던 냉전의 시대, 그때에 힘겹게 그것을 받아들여야 했던 그 시절 소년에 대한 비극적인 자화상이다.

 

안타깝게도 일찍 세상을 떠난 젊은 거장 故 에드워드 양(양덕창)감독이 남긴 걸작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마틴 스콜시지가 '세계 영화 기금(World Cinema Foundation)'이라는 단체를 설립해서 옛 필름들을 복원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4K 고화질 영상으로 복원되었다. 한국의 故 김기영 감독의 '하녀' 역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복원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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