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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우상, 리영희(81세) 선생의 죽음을 통해서 본 우리 사회
시대의 우상, 리영희(81세) 선생의 죽음을 통해서 본 우리 사회
  • 정 상 편집위원
  • 승인 2010.12.06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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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 굵은 삶을 영위한, 신념의 위대함을 실천적 행동으로 보여 준 한국의 대표적 지성으로 평가 받기에 단 한조금의 손색도 없는 우리시대의 위대한 스승, 리영희(한양대 교수, 1929년 생) 선생께서 지난 5일 새벽 타계(他界)하셨다.

고 리영희 선생의 행적을 새삼 말할 필요는 없겠다싶다. 고인의 삶은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이라는 책을 통해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고, 언론인으로서, 교수로서 시대가 요구하는 지성으로서 저항적 행동에 나서기를 단 한치도 주저하지 않았다.

고인은 유신독재 시대에 각종 저항으로 무려 5섯 번의 옥고를 치렀다.

고인의 옥고가 현재의 리영희 선생을 탄생시킨 것은 맞지만, 단순히 그것만이 현재의 그를 만든 전부는 아니다. 리 선생의 삶은 언제나 정직했으며, 시대상을 적확하게 읽고, 그 시대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까지를 분명하게 제시하는 통찰력과 함께 실천적 행동을 중시했다. 앞서 말한 것 때문에 리 선생을 일러 우리는 일찍이 ‘행동하는 양심’, ‘실천적 지성’의 대명사라 했다.

그러나 유신독재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민주주의와 평화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 하자 그는 더 깊은 학문 속으로 몸을 숨겼고, 우리 역시 그를 잊었다. 그런 던 중 어느 해인가 그분은 병든 몸으로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우리는 이내 그분을 다시 잊고 말았다.
세상은 이래서 슬픈 것 아니랴. 대중과 함께 살던 선생의 삶이 대중을 떠난다는 것, 그 같은 일이야말로 리 선생께 정말 슬프고 고독한 일이었을 게다. 80년 대 이후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기간 동안, 곧 지난 30년 리 선생의 삶, 이 시기 선생의 삶은 정말 고독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 같은 선생의 삶은 곧 ‘한국사회의 전형’ 같기도 하다. 한국사회는 쉬 끓고, 쉬 식어 버리는 냄비 속의 물 같다. 이는 단지 사회변화의 속도가 빠른 탓은 아니다. 우리의 민족성을 들어 은근과 끈기를 말해 온 우리들이지만 우리의 몸속에는 금방 잊고 새로운 것을 찾아나서야 하는 유목민의 근성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유목민의 근성이 현재의 우리들에게까지 나타나고 있으며, 사회적 존경과 감사의 긴 끈을 쉬이 놓아 버리는 못된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물론 유목민의 근성이 오로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그 것에도 장단점이 있으며, 현재의 우리들은 그 장점의 혜택 속에 있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이 사회적 존경에 있어서만은 너무나 쉬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 같은 근저에는 사회적 가치체계가 자주 변하는 탓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유신시대가 요구하는 사회적 가치와 민주주의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적 가치는 분명히 다르며, 이 같은 사회적 가치의 차이 때문에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각기 다른 행동을 또한 요구하는 것이다. 만일 리 선생이 이 시대에 ‘전환시대의 논리’ 혹은 ‘우상과 이성’이라는 책을 들고 나타났다면, 어느 누구도 그를 환영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연히 그 책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 몇 사람의 손에 들리는 것이 고작이며, 이내 헌 책방이나 폐지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리 선생은 유신시대가 요구하는 사회적 가치를 옳게 읽었으며, 그 시대를 살아가는 지성인이 행동해야 할 덕목을 통찰했다. 그것이 현재의 리 선생, 곧 위대한 우리사회의 선생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리영희 선생의 죽음,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이는 곧 유신의 시대가 이젠 영원한 무덤 속에 아주 가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리 선생으로 인해 유신시대는 더 포악했고, 이제 선생께서 깊은 잠에 빠져듦으로서, 이로써 유신의 망령이 더 깊은 역사 덫에 갇힌 셈이다.

삼가 리 선생님의 영전에 영원히 시들지 않을 추국 한 송이를 올립니다.

201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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