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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중국의 상신 범려(范蠡)(기원전 536년~448년) 
[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중국의 상신 범려(范蠡)(기원전 536년~448년) 
  • 김진혁 작가
  • 승인 2022.11.04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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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작가] ‘명철보신 明哲保身, 공을 이루면 그 자리에서 물러난다’

제후들의 싸움 춘추시대 말기의 정치인이자 거상. 중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일생의 롤모델이다. 정치·군사·경영 두루 통달했다.

보잘것없는 집안 출신으로 친구 문종(文種)의 추천으로 월나라 구천(句踐)의 신하가 됨. 정치와 군사 방면을 맡아 ‘오월동주(吳越同舟)’로 대변되는 전쟁에서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큰 공을 세웠지만, 토사구팽을 피함.

 

INTRO

초나라 출생한 범려는 가난한 신분이었지만 책을 많이 읽어 학식과 경륜이 높은 전략가다. 천문학, 지리학, 군사 책략 등 정통했고, 월왕 구천(勾践)의 책사가 된다.

월왕 구천을 견마지로(犬馬之勞)하여 오나라 멸망을 가져옴. 토사구팽(兔死狗烹)의 세태를 감지하고 관직을 사퇴하고 처자와 함께 제나라로 떠남.

제나라에서 탁월한 경영능력으로 목축업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모든 재산을 가난한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떠난다. 후대에도 특유의 이재술은 전통 경제학의 묘책으로서 널리 회자된다.

생애 : ‘와신상담(臥薪嘗膽),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선구자

초나라 출신으로 자기 고향에선 미치광이로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대부 문종의 눈에 띄어 월나라에서 구천을 섬겼다.

오왕 합려는 뛰어난 전략가 손무와 오자서의 도움으로 월나라를 공격했다. 그때 범려는 당시 옥에 갇힌 사형수들로 조직한 자살특공대를 조직한다.‘어차피 죽을 몸, 나라를 위해 죽어주면 남아 있는 가족들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라고 설득한다.

오나라 군대가 공격해오자 칼을 들고 적진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칼끝을 자신의 목에 대고 할복자살을 하는 소름 끼치는 모습에 오나라 군대는 그만 전의를 상실했다.

이 전투에서 오나라 왕 합려는 부상을 입고 죽고 만다. 다음 왕은 합려의 아들 부차는 아버지의 복수를 맹세한다.

푹신한 잠자리를 마다하고 가시나무 위에서 잠을 자면서 원수를 잊지 않았다. 오나라 부차왕은 군대를 증강하고 백성들을 보살피면서 나라의 부도 축적하면서 때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구천은 범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먼저 공격을 하다 크게 패하여 회계산(會稽山)에 포위당했다. 오왕 부차는 구천을 서서히 말려 죽이기로 마음먹는다. 치욕스런 패배에 구천은 자결을 결심하지만 범려는 구천을 만류한다.

“오왕 부차는 몇 년을 마구간에서 지냈습니다. 한 번 크게 졌다고 목숨을 내놓을 수는 없습니다. 부차에게 항복하고 후일을 기약해야 합니다.”

또한 여인을 좋아하는 부차의 성정과 오나라 간신이자 재상 백비에게 뇌물을 주고 부차에게 경국지색의 미모인 서시를 후궁으로 들여보내 부차의 혼을 빼앗는다. 부차는 신하의 예를 갖춘 구천과 범려를 월나라로 돌려보낸다.

그 후 지난 치욕을 상기하기 위해서 항상 쓸개를 곁에 매달아 두고 앉아서나 누워서나 쳐다보고 음식을 먹을 때도 쓸개를 맛보면서“너는 회계산의 치욕을 잊었느냐?”를 외쳤다. 구천은 다시 군사를 일으켜 오나라를 쳐들어가서 부차를 굴복시켜 최후의 승자가 된다.

오나라 멸망이라는 과업을 쟁취한 순간에 범려는 제나라로 떠난다. 월왕이 나라의 반을 주겠다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공(功)이 많으면 화(禍)가 뒤따라 온다" 며 뿌리쳤다. 월왕은 즐거움을 함께할 인물이 못 된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친구 문종에게도 떠날 것을 편지했다. ‘하늘을 나는 새를 잡으면 좋은 활도 곳간에 처박히고,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 는 토사구팽(兔死狗烹). 월나라 왕 구천은 목이 길고 입은 새처럼 뾰족하니, 정녕 어려움은 함께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같이 할 수 없다는 관상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문종은 떠나지 않았고 미움을 사서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

이후 제나라에서 목축업을 하여 천금(千金)을 벌어들이는 탁월한 이재(理財), 경영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손꼽히는 거부(巨富)가 됨. 제나라에서 재상 자리를 제안받지만 내던진다.

에피소드: 뭔가를 지키려면 뭔가를 버려라

# 인질로 붙잡혀 있던 월 나라 왕 구천은 3년 동안 무덤 지기로 오나라에서 온갖 치욕을 당한다. 어느 날 부차가 병에 걸렸다. 범려는 뇌물을 써 부차의 병명과 병세를 알아내고 곧 회복된다는 정보도 얻는다.

범려는 구천에게 한 가지 꾀를 낸다. 구천이 부차를 병문안할 때, 그 순간 부차가 변을 보자 구천은 그 변을 손으로 찍어 입으로 가져가 맛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대왕의 변을 맛보니 곧 병이 나을 듯 합니다.” 얼마 후 부차의 병은 다 나았고 부차는 구천의 행동을 되새기며 구천에 대한 의심을 풀었다.

# 제나라는 범려의 능력을 깨달아 재상 자리를 제의했지만 “관리로서 재상까지 오르는 것은 인간의 극치이지만 존명을 받는다는 것은 상스럽지 못하다”며 거절했다. 그의 처세학의 중심은 ‘명철보신 明哲保身, 공을 이루면 그 자리에서 물러난다’이다.

# 사마천의‘화식열전’에서 범려의 베풂의 선행을 제일 높이 평가했다. 돈을 크게 버는 능력을 가졌지만, 돈에 끌려다니지 않고, 부에 천착하거나 쌓아두지 않고 널리 베풀고 훌훌 떠난 겸허한 처세가 아름답다.

교훈: ‘공존과 소통의 지혜를 남기다’

범려는 권력과 부가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한 가지가 최고조의 성공이 이르면 과감하게 버려야 성공과 장수의 비결이다.

권력과 재력에 대한 초연함, 가진 것을 모두 남기고 떠날 수 있는 배포. 나아갈 때와 들어갈 때, 바뀐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처세의 영리함은 전설 속 영웅과 같았다.

목적을 위해서는 머리를 숙일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 당장 눈앞의 이해관계에 함몰되지 않고 오래 사는 길을 택했다. 수치를 참고 실패의 교훈을 얻은 그는 당연히 후세에 인생의 귀감, 멋진 성공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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