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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스티브 잡스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스티브 잡스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 김진혁 작가
  • 승인 2022.12.09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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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작가] Apple(애플)의 공동 창업주 前 CEO. Macintosh(매킨토시) 개발, 데스크탑 시장 개척, 2010년  iPhone(아이폰)을 통해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 시대를 연 혁신의 아이콘. 2011년 췌장암 복합증으로 사망.

INTRO: 세상을 바꾼 천재의 열정과 광기! 

잡스는 입양아, 대학도 중퇴한 문제아였지만 21세기 IT 산업의 아이콘.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소개하는 데에 아주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인 발표 방식을 사용한 프레젠테이션의 귀재로 유명하다.

제품개발에 일조하고, Apple의 광고 전략 등 독특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 창의적인 생각과 행보로 디지털 시대를 상징하고, 다소 자기중심적이고 성격적 결함이 있음에도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다.

바로 그만이 가진 장점이자 배울 점이다.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젊은 나이에 사망한 것이 아쉽다.

생애: 입양아로 태어났지만 성공한 CEO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인 어머니와 시리아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반대로 그들은 결혼하지 않고 잡스가 태어나자마자 입양시켰다.

그렇게 잡스는 친부모와 헤어져 폴 잡스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후에 생모와는 만난 적이 있지만, 생부와는 끝내 만나지 않았고 죽을 때까지 부모로 인정하지 않았다.

폴 잡스 부부는 스티브 잡스를 친아들처럼 생각하고 열심히 키웠다. 어렸을 때 잡스는 부모 속을 많이 태우는 아이로 천재성은 보이지 않았고 학교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고아라고 아이들이 놀리는 바람에 아이들과 노는 대신 차고에서 안 쓰는 부품을 모아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다. 그는 비건 채식주의자로 견과류와 물만 먹었다. 하지만 가족과의 일본 여행 때 장어 초밥만큼은 너무도 좋아했다.

1972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휴렛팩커드에 여름 인턴으로 채용된다. 그곳에서 Apple을 같이 세운 동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만나는 행운을 얻는다.

인턴이 끝나고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 칼리지 철학과에 입학하지만, 한 학기 만에 전공이 맘에 들지 않고 대학 생활에 흥미가 없다는 이유로 중퇴한다.

진짜 중퇴 이유는 부모님의 저축을 몽땅 투자할 만큼 자신의 대학 생활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 중퇴 후에도 많은 교양 수업을 청강하여 훗날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동양 철학에 관심이 많았다. 1976년 21세 나이로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창업한다.

1984년 첫 제품인 애플 컴퓨터 매킨토시를 출시했다. 조악한 나무 상자에 담긴 컴퓨터광을 위한 기계로, 이 컴퓨터는 잡스의 부모 집에서 손으로 조립돼 666달러 66센트에 팔렸다.

워즈니악은 컴퓨터를 만들었지만, 잡스는 시장을 창조했다. 1985년 애플은 6개의 공장 중 절반이 폐쇄되고 직원의 5분의 1이 해고되는 큰 손실을 봤다. 그 결과로 잡스는 펩시에서 영입한 존 스컬리 CEO와 갈등과 혁신 제품들의 실패로 회사에서 쫓겨났다. 

잡스는 1986년 새로운 회사 넥스트(NeXT)를 세웠고 기업과 고등교육 [프로그램] 이용자들을 위한 유닉스(UNIX) 기반 워크스테이션을 생산했다.

넥스트에서 Apple로 복귀하고 CEO 아멜리오를 축출한 다음 iMac(아이맥)으로 회사를 살려놓았고 연봉 1달러를 받았다. 이 말은 사실 잡스가 스톡 옵션도 좀 챙겨달라는 의사 표현이다. 

잡스는 2001년 10월 아이팟(iPod)을 선보였고 2003년 4월에는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를 내놨다. 그로 인해 애플은 성장 가도를 달렸다. 2007년 첫 아이폰 출시, 애플을 세계 최대 시가총액을 가진 가치 있는 기업으로 만들었다.

1983년 잡스는 한국을 방문해서 당시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을 만났다. 당시 이병철 회장은 잡스를 만난 후 "굉장히 훌륭한 기술을 가진 젊은이"라고 평가했다.

잡스는 당시에 삼성전자의 매장에 Macintosh를 전시할 것을 제안했지만 당시 삼성은 PC보다는 반도체에 더 관심이 있던 상황이라 제안을 거절했다. 만약 이 때 삼성이 이 제안을 승낙했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IT시장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대부분의 컴퓨터 기업들이 IBM과 싸웠지만, 잡스는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기업 소니와 경쟁하길 원했다. 늘 잡스는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라고 요구했다.

경영 철학 ‘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al’

스티브 잡스는 단순히 능력 있는 CEO를 넘어 IT계를 주도한 인물이다. 실적이 부진하거나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회사들을 뛰어난 창의력과 적극성으로 기업 가치를 크게 끌어올렸다.

애플을 창업할 때 '마케팅 철학'으로 열정과 지향해야 할 가치관 및 차별화 전략을 통합시켰다. 스마트폰의 둥근 모서리 등 세부적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강박적일 정도로 집착했다. 애​플의 리더십 을 세 가지 포인트로 요약해 본다.

첫째는 공감(empathy). 고객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고객과 연결시킨다. 고객의 욕구가 어디에 있는지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집중(focus), 애플이 목표로 하는 일을 훌륭하게 완수해내기 위해서는 리더와 회사가 해야 할 일뿐 아니라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도 과감히 눈을 돌린다. 집중의 다른 해석이었다. 세 번째는 impute의 '강렬한 시그널' '강한 인상' 등이다.​

에피소드 “Apple이 컴퓨터 업계의 소니가 되자”

#1. 펩시의 前 CEO였던 존 스컬리를 Apple의 CEO로 영입할 때의 이런 말을 한다. "(몸에 안 좋은) 설탕물이나 파는 거 그만하고 나랑 같이 세상을 바꿔보고 싶지 않습니까?"라고 설득시켰다. 아이러니하게 훗날 스컬리는 잡스를 내쫓아버렸다.

#2. 스탠퍼드 대학에서의 축사 연설은 유튜브 조회수 3000만 건 돌파.

그중 일부로 “여러분들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과거의 통념, 즉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 사는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견해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가리는 소음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라가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3. 잡스의 리드 대학교 철학과를 한 학기만 다니고 중퇴한 후, 사과 농장에서 히피 공동체 생활을 하다가 선불교에 입문했다. 그는 왼손잡이지만 수기는 오른손으로 썼다.

밥 딜런의 광팬이었고 그를 매우 존경했다. 딜런의 상품 출시를 알리면서 잡스는 "밥 딜런은 우리 시대에 가장 존경받는 시인이자 뮤지션이다. 또한 그는 개인적으로 제 영웅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어록: 항상 갈망하라, 항상 우직하게. 한 가지만 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만큼 미친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다." 《Think Different》 광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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