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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20세기 가장 숙련된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20세기 가장 숙련된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 김진혁 작가
  • 승인 2023.01.20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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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작가] 참전용사, 종군기자 그리고 소설가. 《노인과 바다》(1952)로 퓰리처상,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 주제는 주로 전쟁과 관련된 것으로, 문명 세계의 허무주의와 인간의 비극적인 모습을 간결한 문체로 묘사했다.

INTRO: 허무주의와 야성의 결합

미국 시카고 교외 마을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캔자스시티 스타》의 기자가 되었다. 1918년(19세) 이탈리아 전선의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으로 참전했으나 부상입고 귀국한 후 문학가가 되었다.

1923년 『3편의 단편과 10편의 시』를 처음으로 파리에서 출판했고, 1924년 스케치풍의 단편 모음집 『우리 시대에』 출간. 1926년(27세) 10월에 장편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로 일약 유명 작가로 등극.

전후 파리와 스페인을 배경으로 각국 망명객들의 향락적인 풍속을 다룬 이 작품은 젊은이들의 애독서가 됨.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는 4개월 만에 8만 부가 판매되었다.

1937년(38세) 스페인내란이 발발하자 공화정부군에 가담한 후 미국으로 돌아온 스페인내란을 배경으로 완성한 대작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를 출간했다.

1944년(45세) 특파원 자격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했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귀국하여 쿠바에 거처를 정하고 집필에 매진했다.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1954년 노벨문학상에 선정. 이후 거의 아무것도 발표하지 못했고,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증, 기타 질병에 시달리다가 1961년 총구를 입에 문 채 자살했다.

생애: 무기여 잘 있거라

산부인과 의사인 아버지와 음악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둘 다 인종차별주의자였고 어렸을 때 어머니의 강요로 자주 여장을 당해 어머니와는 평생 사이가 나빴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 헤밍웨이는 곧바로 달려갔지만, 《노인과 바다》를 쓸 무렵에 어머니가 죽자, "난 글을 마저 써야 한다. 돈을 부치면 가족들이 알아서 할 거다." 라는 식으로 가볍게 무시했다.

광기의 유전과 예술적 재능성을 물려받은 헤밍웨이는 강인하고 조용한 남자의 표본인 아버지를 평생 존경하였고 자신의 롤 모델로 삼았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처음 사회생활을 기자로 시작했고, 이탈리아 전선에서 적십자사 소속의 구급차 운전사로 참전했었다. 1차 대전 이후의 파리에 체류하며, 스콧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에즈라 파운드 등의 미국 작가들과 교류하며 문학적 소양을 키웠다.

헤밍웨이는 평생 인생을 격렬하고 폭력적이며, 진취적인 진정한 마초로 살았다. 6피트(183cm)가 넘는 거구로 항상 끓어오르는 정열을 주체하지 못해, 사냥, 복싱 등 스포츠를 즐겼다.

여자를 밝혔으며 사생활도 문란해 여러 차례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자신을 세상에 과시하는 것도 즐겼다. 그가 자살한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늙어 세상의 관심이 멀어지는 걸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비행기 사고로 정신착란까지 일으키기도 함. 죽기 전 몇 달 동안 글을 쓰다가 맘에 들지 않아 계속 찢고 쓰던 걸 던지고, 술을 마시며 괴로워했다. "이젠 써지지 않는다! 써지질 않아!”라며 자살을 예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자살은 가족력으로 그의 가족 중 5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아버지, 형, 누나, 손녀, 본인) 또한 아들 중 한 명은 평생을 우울증으로 고생하였다.

작품세계: 허무주의, 하드보일드 스타일

그의 작품에는 대체로 극기주의, 허무주의, 하드보일드 스타일과 강인한 남성상 등이 잘 표현되어 있다. 헤밍웨이 작품의 주요주제는 죽음과의 대결로 종군기자로 참여한 경험으로 호전적인 전쟁 관련 작품을 썼다.

이탈리아 전선에서 부상병 차량의 운전사로 종군하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은 것이 평생 죽음의 공포로 사로잡았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그때의 체험이 소재가 되었고, 1930년대에는 투우를 다룬 ‘오후의 죽음’(1932)과 아프리카 사파리에서의 체험을 기록한 ‘아프리카의 푸는 산들’(1935) 등의 논픽션을 집필했다.

‘노인과 바다’소설은 한 늙은 어부가 어느 날 바다에 낚시를 나갔다가 운 좋게 대형 청새치 한 마리를 잡게 된다.

그러나 운반 도중 상어를 만나 사투를 벌였으나 결국 뼈만 남기고 빈손으로 돌아온다. 그래도 노인은 좌절하지 않고 또 다시 내일을 향해 일어서는 것으로 소설은 마감된다.

에피소드: 실패하는 사람의 대부분 원인은 자기 불신이다.

#1. 헤밍웨이의 생일에 어머니가 그에게 선물을 소포로 보냈는데, 열어보니 그 안에는 권총(그것도 아버지가 자살할 때 썼던 것)이 들어있었다.

#2. 고양이를 매우 좋아해서 30여 마리의 고양이를 키웠으며, 이들의 후손은 헤밍웨이의 사후 기념관이 된 자택에서 여전히 거주하고 있다.

#3. 하루는 여동생과 새를 많이 잡고 돌아가던 중 친구들이 '집에 가서 공부나 하지 뭔 사냥을 하냐'며 시비를 걸었고, 이내 그는 자기가 잡았다고 하니까 그들은 '거짓말 마라, 우리 아빠도 그렇게 많이는 못 잡는다'라며 헤밍웨이를 집단 구타했다. 이후 권투를 배웠고 그를 귀롭혔던 친구들이 회피.

#4. 쿠바에 살던 시절 지인인 어부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창작한 글이 바로 노인과 바다. 당시 그 어부는 그 대가로 그냥 밥 한끼에 술 한잔 사주면 된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소설이 크게 성공한 뒤 헤밍웨이가 보답이라며 2만 달러라는 거액을 어부에게 주었다고 한다.

어록: 사람은 패배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캐서린은 계속해서 출혈한다. 의사는 그것을 멎게 하지 못했다.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가서 캐서린이 죽을 때까지 같이 있었다. 캐서린은 줄곧 의식이 없었고, 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무기여 잘 있거라》 中

“여기서 이길 수 있다면 어디서나 이길 수 있다. 세상은 괜찮은 곳이자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며, 여길 떠나는 게 무척 싫다. 오늘은 수많은 날들 중 그저 하루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날들에 벌어지는 일은 네가 오늘 뭘 하냐에 달려 있다. ”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태양은 또 다시 떠오른다. 태양이 저녁이 되면 석양이 물든 지평선으로 지지만 아침이 되면 다시 떠오른다. 태양은 세상을 어둠이 지배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태양이 있는 한, 절망하지 않는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사람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 《노인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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