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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도덕적, 사색가 대문호, 그리스도교적 무정부주의자 톨스토이
[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도덕적, 사색가 대문호, 그리스도교적 무정부주의자 톨스토이
  • 김진혁 작가
  • 승인 2023.02.17 1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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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작가]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사상가로, 주요 작품으로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부활》 등이 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거장으로 현재까지 전 세계 문학을 대표하는 위대한 소설가로 평가받는다.

종교와 인생관, 삶과 죽음, 육체와 정신 등을 작품 속에 녹여내면서 나름대로 해답을 독자에게 제시한다.

INTRO: 사회 제도를 비판하고 약자들의 편에 선 사상가

“톨스토이는 하나의 세계이자 인간이며, 톨스토이를 읽지 않은 사람은 자신을 문화인이라고 할 수 없다.” _소설가 막심 고리키

그는 무정부주의, 채식주의, 평화의 가치를 확고히 믿었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폭력 대신에 그 대안을 강력히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톨스토이는 모든 세계에서 찬사를 받았지만 거의 언제나 홀로였다. 러시아의 혼란스러운 현실을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없음을 깨닫고 자포자기하면서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한다.

생애: 이상주의에서 종교적 성인으로 추앙받은 상남자

1828년 9월 9일 남러시아의 야스나야 폴라나에서 부유한 지주 귀족인 백작의 넷째 아들로 출생했다. 그러나 9살 때 양친을 여의면서 친척에 의해 양육되어 내성적인 소년으로 자랐다.

프랑스, 독일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았고, 16세 때 카잔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하였으나, ‘대학은 학문의 무덤이다’라고 생각해 2년도 되기 전에 중퇴한다. 남쪽의 영지로 들어가 농지개혁을 시도했으나 실패해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방탕한 생활을 한다.

1848~50년까지 주색잡기와 도박 등 방탕한 삶을 살았지만, 1851년 카프카스로 가서 입대하여 다시 자연의 웅대함 속에서 다시 일어난다.

1859년 고향인 야스나야 폴라냐에 초급학교를 설립한다. 1862년 친구의 딸 소피야와 결혼한다. 그러나 정신적 고뇌와 방황 끝에 결국 종교에 귀의하고 《참회록》, 《교회와 국가》, 《나의 신앙》 등을 발표하여 독특한 톨스토이주의를 구축하였다.

톨스토이주의는 현대의 기독교 대신 원시 그리스도교로 회귀하며, 단순하고 간소한 생활을 유지하고,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복음서의 가르침을 따라 하느님을 공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며, 폭력에 무저항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톨스토이./출처=픽사베이
톨스토이./출처=픽사베이

작품세계: 인간은 사랑으로 살아간다

1852년 자서전인 《유년시대》를 익명으로 발표하였고, 이어 《소년시대》(1854), 《청년시대》(1856)등을 완성해 많은 찬사를 받았다.

1857년 형을 따라 처음 해외여행 간다. 파리에서 기요틴(단두대) 처형장면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진보라고 불린 서구 문명의 폭력과 공포의 지배를 보고 실망하며 돌아온다.

그의 일기 습관은 유명하다. “나는 평생을 이웃 사람들에게 바칠 각오를 했다. 말하는 것은 이것이 마지막이다. 앞으로 사흘 안에 남을 위한 일을 한 가지도 못하면 나는 자살한다.” 라고 적으면서 자신에게 엄격했다.

이후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전쟁과 평화》(1865~69)와 《안나 카레니나》(1875~77) 등 러시아 문학 사상 불후의 대작들을 집필하였다.

‘안나카레니나’는 관능적인 사랑과 그리스도교적인 사랑을 대비해 묘사하면서 러시아 귀족 사회의 양상과 여성의 애정 심리를 그린 일종의 가정소설이다.

71세에 쓴 「부활」(1899) 소설에서 부활이란 인간의 정신적 부활이자 새로운 러시아의 탄생을 의미한다. <부활>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러하다. 어느 날 재판정의 배심원으로 나온 주인공 네플류도프 공작은 살인과 절도 혐의를 받아 재판정에 나온 여죄수 마슬로바를 만난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여인은 자기가 청년 시절 정욕의 대상으로 삼았던 순결하고 아름다운 카츄사였다. 그 여인은 네플류도프의 아이를 임신한 뒤, 양녀 겸 하녀로 있던 집에서 쫓겨나 매춘부로 전락하여 죄를 범했던 것이다.

네플류도프는 그녀가 타락하게 된 원인이 자신의 무책임한 행동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는 카츄사에 대한 양심의 가책과 더불어 귀족 사회에 속한 자신의 생활 태도에 대해 깊은 회의를 품게 된다.

또한 그는 카츄사의 감형운동을 위하여 감옥에 드나들면서 형사제도의 불합리도 목격하게 된다. 결국 네플류도프는 속죄(회개)하기 위해 카츄사를 따라 시베리아 유형을 자원하여 자기도 시베리아로 떠난다.

‘전쟁과 평화’는 사회조직과 법률의 허점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침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부패해가는 귀족 사회와 그에 저항하는 청년 귀족의 번민과 깨달음을 그리고 있다.

​어록: 행복은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산물이다!

“행복은 외적인 것에 달리지 않고 그 외적인 것을 보는 방식에 달려있다.”

“믿음은 인간 삶의 의미에 대한 지식이다. 그 결과는 사람은 자신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믿음은 삶의 동력이다. 사람이 살면, 뭔가를 믿어야 한다. 믿음이 없으면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 운명은 어울리기 매우 힘든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이어야 한다.”

“결혼은 두 사람을 태우고 격랑의 바다를 항해하는 보트와 같다. 한 사람이 갑자기 움직이면 보트는 가라앉는다.”

“폭력이 아닌 사랑을 위한 삶을 살아라”

“싸움의 잘못은 양쪽에 다 있다. 이기주의에서 벗어나라”

“돈이 아닌 좋은 사상을 잃어버림을 아까워하라. 선한 행위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에피소드:‘무소유(無所有)’를 택한 이상주의자

#1.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말년은 행복하지 않았다. 저작권과 판매료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톨스토이의 생각에 톨스토이와 부인 소피야와의 갈등이 커졌다.

급기야 대판 부부싸움을 벌이고 가출한 후에서 '아스타포보 역'에서 동사했다고 한다. 죽기 직전 유언에 아내는 절대로 장례식장에 발도 들이지 못하게 당부해 소피야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2. 톨스토이는 청년 시절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자살까지 시도했다. 그러나 그는 잘못을 뉘우쳤고 가난과 무지몽매함에서 빠져 허우적거리는 농민에 대해 연민을 품고 살았다.

무려 자녀 13명 양육해야 했고 아버지로서 자식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직접 교육한 걸로 알려져 있다. 내면에 뿌리내린 상류층 특유의 도덕적 불감증으로 실생활은 조금 달랐다. 그는 농노의 아내와 관계를 맺어 사생아를 낳고는 그 아이를 마부로 부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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