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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레판토의 외팔이 세르반테스, 국민 작가로 거듭나다
[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레판토의 외팔이 세르반테스, 국민 작가로 거듭나다
  • 김진혁 작가
  • 승인 2023.03.24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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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작가] 스페인의 소설가, 군인, 시인, 극작가. 스페인어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그의 대표작인 돈키호테는 '최초의 근대 소설'이며 세르반테스에게 불멸의 명성을 얻게 해준 걸작이다.

그의 영향력은 언어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근대 이후의 스페인어 자체를 '세르반테스의 언어(La lengua de Cervantes)'라고 불러버릴 정도다. 멕시코의 대표 작가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세르반테스를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건국의 아버지'"라고 평했다.

INTRO: 최초의 근대 소설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아버지

세르반테스의 삶은 온갖 사건과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가난과 실패에 시달리다 못해 펜을 집어 든 상이군인,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글 쓰는 방법과 행동을 통해 스페인의 대표 문호로 추앙받았다.

마드리드의 중심부인 에스파냐 광장에는 그와 돈키호테, 산초의 동상이 있어 국가의 아이콘 역할을 한다.

생애: 에스파냐의 흥망성쇠를 반영하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마드리드 북쪽에 자리 잡은 카스티야 지방의 작은 도시인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서 몰락한 이달고 집안을 뿌리로 둔 이발사 겸 외과 의사 아들로 태어났다.

세르반테스의 유년 시절은 가난과 비참함과 부끄러움으로 얼룩졌고 각지를 돌아다니는 불안정한 생활을 하였다.

568년 당대 최고 지식인 후안 로페스 데 오요스가 낸 수필집에 그의 시 4편이 실린 적이 있다. 돈키호테는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찢어진 종이라도 주워 읽는 열렬한 독서광이었다.

569년이 교황청에 특사로 파견된 스페인 추기경의 종자로 선발되어 로마로 갔고, 이후 스페인 왕 펠리페 2세가 동군연합으로 있던 나폴리 왕국으로 가서 그곳에 주둔해 있던 스페인 해군에 지원하게 된다.

하지만 왕이 머무는 궁정이나 성채 등에서 싸우면서 무기를 꺼내서는 안 된다는 법을 위반해, 오른손이 잘리고 10년간 마드리드에서 추방당하는 벌에 처해지자, 이를 피해 이탈리아 반도로 도망간다.

로마에서 먼 친척뻘 되는 고위급 사제의 도움을 받고, 훗날 추기경이 되는 다른 사제의 수행원으로도 일하면서 르네상스 문학을 섭렵했다.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열병에 걸리고, 총상을 입고 왼손이 불구가 되어 ‘레판토의 외팔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군 생활 중에 탄 배가 태풍에 휩쓸리고 튀르크 해적의 습격까지 받아 포로가 되는 험한 인생을 살았다. 노예 신분으로 5년간 포로 생활을 하다가, 가족이 모은 돈으로 몸값을 지불하고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풀려났다.

그때가 33세였다. 돈키호테의 강조하는 주제는 자유다. 집에 돌아왔지만 가세는 더 기울어 있었다. 1569년 첫 번째 소설 ‘라 갈라테아’를 출간했지만, 생계를 위해 포르투갈로 가서 왕실 업무를 봤다.

세르반테스는 군사 식량을 납입하는 식량 조달원으로 안달루시아 지방을 떠돌아다니는 직책을 맡았으나, 그런 중에도 교회 소유 밀을 징발했다고 파문당하고, 당국 허락 없이 밀을 팔았다는 죄목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그라나다에서 세금 징수원하면서 책임자의 먹튀로 세비야 감옥에 7개월 동안 갇힌다. 하지만 갇힌 것이 행운이 되어 옥중에서 돈키호테를 구상했다. 풀려난 뒤 1605년 돈키호테 1권이 출판된다. 세르반테스는 자신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지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이 되었고 문학사를 대표하는 걸작의 반열에 오른다. 라 갈라테아 이후 무려 20년 만에 내놓은 소설로 유럽 최고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세반테스는 1615년 돈키호테 속편을 낸다. 그 뒤 마드리드로 거주지를 옮기고 1616년 당뇨병과 간경변으로 한편의 영화 같은 생을 마감한다.

20세기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문학 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단테 이후 서양의 중심 작가는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였으며 그 이후에 나온 톨스토이나 괴테, 디킨스, 프루스트, 조이스도 그에 못 미친다." 라고 평했다.

출처=픽사베이
출처=픽사베이

작품 세계: 익살스러운 일을 저지르며 모험을 즐기다

대표작 돈키호테에서 인물묘사와 이야기 역동성, 심리 변화에 중점을 두고 중세기사도 문학을 풍자했다. 돈키호테는 작중 주인공이면서 자신을 상징한다. 작품 도입부에 라만차 마을에 이달고가 살고 있었다고 소개한다.

주인공 돈키호테에서 ‘돈’은 경칭이고, ‘키호테’는 갑옷의 허벅지 보호 장비 이름이다. 자기가 탄 말 이름도 정한다. 로시난테다. ‘그전에는 비쩍 말랐지만, 지금은 어느 말보다 뛰어난’ 말이라는 뜻이다. 기사에게 필요한 귀부인도 이웃집 여인 알돈사를 상상의 여인 ‘둘시네아’로 부른다.

돈키호테의 거침없는 낙천주의와 방랑을 떠난 이유는 명쾌하다.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가난하고 천대받는 자들을 돕고, 높은 사람에게 억눌린 자, 모든 억울한 자를 구해주는 것이다.

세상이 그를 원하는데 꾸물거리고 있으면 죄가 된다는 생각에서다. 세르반테스는 당대 거의 모든 문학 장르를 섭렵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탁월한 시인, 극작가, 산문가로서 다양한 장르를 소개했다.

문학사적으로 [돈키호테]는 ‘최초의 근대 소설’로 평가된다. 기사를 선망하는 주인공이 시대착오적인 행동으로 비웃음만 사고,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로의 이행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나아가 이 소설은 독특하고 파격적인 서술 방식으로도 유명하다.

돈키호테에겐 일말의 권위의식도 없다. 세숫대야를 투구로 쓰고 다니며, 고행한다고 윗도리만 입고 아랫도리는 벗은 채 공중제비를 돌기도 한다.

거침없는 행동과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풍자와 조롱의 몸짓으로 당시 기득권의 상징인 이성을 무너뜨린 광인의 낯설고 위험한 도전이었다.

에피소드: 가장 위대한 천재적인 창작

#1.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시대의 에스파냐에서 “성직자나 병사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가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계제패라는 야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함께 펠리페 2세는‘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을 건설한다.

그러나 1588년 자랑하던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에 패하면서 국력이 급격히 기울어진다. 이런 조국의 운명과 함께 실의에 빠진 50대 중반의 세르반테스가 감옥에서 에스파냐의 영광 시대를 뒤돌아보면서 쓴 작품이다.

#2. 클리프턴 패디먼는 오늘날 사람들이 “돈키호테는 읽기보다는 인용하기를 더 많이 하고, 즐기기보다는 칭찬하기를 더 많이 하는 책”이다. 과거와 당대의 다양한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하고, 융합한 시대 변화를 통찰한 창의적 문학 지평을 열었다.

어록: 운명은 항상 성공의 요소를 담고 있다

“재산보다는 희망을 욕심내자. 어떠한 일이 있어도 희망을 포기하지 말자”

“전쟁에서 받은 상처는 명예를 주는 것이지 명예를 앗아가는 것이 아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웠으며,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잡을 수 없는 저 별을 잡으려했다.”_돈키호테가 죽으면서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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