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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중국의 근대화를 낳은 위대한 사상가 루신(魯迅)
[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중국의 근대화를 낳은 위대한 사상가 루신(魯迅)
  • 김진혁 작가
  • 승인 2023.03.31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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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작가] 중국의 문학자, 사상가. 1881년 저장성에서 태어남. 일본에 유학하여 의학을 공부하다가 그 후 문학으로 전환하였다. 귀국 후 혁명당 회원이 되었고 교원과 정부 관리를 거쳐 1918년에 잡지 ‘신청년’에 처녀작 광인일기를 발표.

1921년 아큐정전을 잡지에 연재하여 명성을 얻고 교수 역임했다. 혼란과 실수, 압제와 암흑을 되풀이하고 있는 병든 중국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우쩌둥은 ‘신민주주의론’에서 “루신의 방향이 중화 민족의 신문화가 갈 방향”이라고 칭송했다.

INTRO: 잠에서 깨어나라 '정신계의 전사'(戰士)

반청(反靑) 혁명 운동에 참가. 그의 혁명사상은 '정신계의 전사'로 국민을 일거에 잠에서 깨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해혁명(1911)의 좌절로 인해 중국 사회 민중의 존재 방식에 새롭게 눈을 돌렸다.

1910년부터 본격적 문필활동을 시작하고 『아큐정전』(阿Q正傳)을 내어 중국 근대문학의 기초를 이루었다. 그의 사상은 마르크스주의와 중국의 현실과 동떨어진 사고, 공론(空論)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다.

1902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의학을 공부했으나 중국과 중국인의 암울하고 비참한 현실을 목도하고는 의학을 포기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18년 5월, ‘노신’이란 필명으로 중국 현대 문학사 최초의 백화문 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중국 신문화 운동의 주춧돌을 놓고 중국 문학의 현대화에 기여 했다. 중국 근대사 속의 암울한 현실을 날카로운 독설과 번득이는 유머로 비판하며 중국 민중을 깨웠다.

생애: 중화 민족의 신문화의 갈 길을 제시

중국 저장성 출생. 어려서 이름은 장서우[樟壽]였고 루쉰은 그의 필명이다. 그는 비교적 유복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고 구식교육을 받았다. 할아버지가 부정부패로 감옥에 갇히고, 아버지가 병사함으로 어린 시절 고생스럽게 살았다.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학교에서 강의 중에 노일전쟁에서 중국인이 처형되는 영화를 보고 격분하여 학교를 자퇴한다. 그는 의학 공부를 단념하고, 동경에 머물면서 외국의 소설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였다.

이때 그는 중국 국민성 개조를 위한 문학을 지향하였다. 날카로운 필봉으로 중국의 현실을 비판하는 산문과 소설을 지속적으로 발표하는 한편, 실제적인 사회 개혁 운동에 종사하여 근대 중국의 변혁을 이끈 지도자가 되었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사로 근무하다 그만두고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중화민국 신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한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광인일기(狂人日記)》를 발표하여 가족제도와 예절의 폐해를 폭로하였다. 이 무렵에 발표한 《아큐정전(阿Q正傳)》은 그의 대표작이자 세계적 수준의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소비에트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흡수, 소개하기도 하였다. 1927년 여성 사회운동가 허광평과 상하이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930년 좌익작가연맹이 성립되자 지도적 입장에 서서 활약하고,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이 당시 그는 좌익 작가연맹 가입하여 국민당에 수배되어 한동안 도피 생활을 하였다. 1936년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그해 56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당시 1만 명 이상의 군중이 자발적으로 정중하고 장엄한 장례를 거행하는 한편 그의 관에 ‘민족혼(民族魂)’이란 큰 깃발을 덮었다.

작품 세계: 중국 국민성의 열악함을 꼬집다.

『아큐정전』(阿Q正傳)은 중국 근대문학의 기초를 이루었다. 또한 예리한 사회·문화비평을 무수히 발표하며 사회실천을 이루었다. 중편소설 아Q정전의 배경은 신해혁명 전후로, 실패한 신해혁명의 교훈을 종합하여 과거 중국 하층민의 우매하고 무지한 현상을 폭로한다.

아Q는 머리에 부스럼이 있어 마을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얻어 맞고, 모욕을 당하면서도 정신승리법으로 이를 극복한다. 아Q는 황당한 중국 국민의 이미지로 나타냈다. 이후 아Q는 중국인의 어두운 그림자가 되었다.

아Q는 최하층 일용직 농민으로 출신지도 분명하지 않다. 아무런 재산도 없는 거지다. 그래서 다른 사람 집에서 일을 해주며 돈을 버는데 그 일 마저 엄청 못 한다. 힘도 약하고 재산도 없고 머리고 멍청한 한심한 인간 그 자체이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아Q는 자부심이 똘똘 뭉쳐 있다. 그는 언제나 자기가 일 잘하고 힘도 세고, 인품도 훌륭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다닌다.

그는 우선 상대방을 보아 어눌한 자에게는 욕설을 퍼부었으며 자기보다 힘이 좀 약한 것 같으면 때리기도 했다. 그런 아Q가 만만한 상대로 비구니를 삼는다.

남자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은 연약한 여자에게 온갖 굴욕을 안겨주면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한다. 아Q는 잘못된 허세와 자부심은 가득 차 있어서 자신이 탈모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사람에게 덤벼들었다.

물론 만만한 사람을 대상으로만 그랬다. 두들겨 맞으면서도 '군자는 폭력으로 다스리지 않는다' 라는 자기 합리화를 해댔다.

허세를 부리며 인생 역적을 할 뻔하다가 강도질했다는 죄명으로 총살당한다. 총살당하는 그 순간까지도 자존심을 놓치 않았다.

온갖 굴욕을 다 당하면서도 아Q의 자부심이 꺾이지 않는 모습이 당시 중국의 위상과 유사하다. 유럽 열강에게 얻어맞고 땅과 재산과 노동력을 열강들에게 갖다 바치지만, 마음속에는 중국이 세계 최강의 국가이며 최고의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잃지 않았다.

명문장: 정치와 사회에 관한 날카로운 비판을 전개하다

"아무리 위대한 천재일지라도 이 땅에 탄생하는 첫 울음소리마저 아름다운 시일 수는 없다.”

"희망이란 마치 땅 위에 난 길과 같아서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그곳이 곧 길이 되는 셈이다.“

에피소드: 백화문(알기 쉬운 말로 쓴 소설) 창작의 선구자.

#1. 최초의 백화문 단편소설 『광인일기』가 나오자 문단은 발칵 뒤집혔다. 한 ‘미치광이’의 체험을 폭로함으로써 반전통과 문화 반성이라는 강력한 목소리를 냈다. 노신의 명성은 높아져 일약 중국 문단의 총아가 되었고, 중국의 낡은 문화와 전통을 비판하고 암울한 현실을 폭로하는 백화소설을 이어졌다.

노신은 니체처럼 비판에는 뛰어났지만, 건설적 대안은 부족했다는 한계도 있다. 그러나 중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노신의 위대한 정신과 비판사고는 지속된다.

#2. 노신은 평생 수많은 책을 읽었다. 다양하고 많은 책을 읽고 그것을 기반으로 그만의 독특한 독서 방법론을 구축했다.

그의 독서법은 첫째, 독서를 할 때는 책을 골라 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기 입맛에 맞는 책만 골라 읽어서는 안 된다. 둘째, 문예 작품의 경우 작가들의 대표작을 보고 문학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를 살핀다.

셋째, 공부하고자 하는 당사자에게 맞추어 요지를 이해하고 책이 나온 사회적 배경을 살펴본다. 넷째, 현실과 역사의 결합을 중시하고, 정확한 사상적 방법을 장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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