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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헤르만 헤세, 자아 성장의 구도자
[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헤르만 헤세, 자아 성장의 구도자
  • 김진혁 작가
  • 승인 2023.05.05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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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작가] INTRO: 삶이 고달프고 위로받고 싶다면

헤세는 문학가 아버지 밑에서 엄격한 종교적 규율로 자랐다. 부모는 신학을 공부하길 바랬지만 헤세는 시와 예술에 열망을 품었다. 수도원을 중퇴한 뒤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다.

평생 고독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죽음을 가까운 벗으로 삼았다. 세 번의 결혼, 나치에 의해 ‘바람직하지 않은 작가’로 낙인찍히기도 함. 그런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았고, 194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생애: 자연과 인간을 순수하게 사랑하기에

독일의 문호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는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와 신학계 집안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외조부 헤르만 군데르트는 유명한 신학자로 인도에서 다년간 포교했고, 인도학의 수천 권 장서로 헤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헤세는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고 이듬해 어려운 주(州) 시험을 돌파하여 마울브론의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시인을 꿈꾼 헤세는 신학교의 속박된 기숙사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그곳을 탈주한다.

다시 학교로 돌아갔지만, 일 년도 못 되어 퇴학하고, 서점의 수습 점원이 된다. 그 후 한동안 아버지의 일을 돕다가 병든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시계공장에서 삼 년간 일하면서 문학 수업을 시작했다.

1899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한 헤세는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를 발표하여  릴케의 인정과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자연과 인간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삶을 더 깊이 이해해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학교 소설 ‘수레바퀴 밑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데미안’(1919)은 폰타네 상을 수상하는 등 영예를 얻는다.

가정적으로는 불행하여 46세 때 첫 부인과 이혼하고 50세에 두 번째 부인과도 이혼한다. 신경쇠약에 걸려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는 결혼생활의 위기, 인도 여행을 통한 동양에 관한 관심, 제1차 세계대전의 야만성 등을 거론하여 문학계의 비난과 공격을 받기도 했다.

심리학자 융의 영향을 받아서‘나’를 찾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 내면의 길을 지향하며 현실과 대결하는 영혼의 모습을 그리는 작품들을 속속 발표한다. 헤세는 자아실현과 성장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85세로 죽었다.

작품세계: 삶의 문제는 견디고 체험하기 위해 존재한다

<데미안>은 자전적 소설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중상을 입은 싱클레어라는 청년의 수기형식이다. 고뇌하는 청년의 자기 인식 과정을 고찰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곤경에 빠진 독일 국민에게 큰 영향을 끼침으로써 유명해졌다. 당시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발표되었다.

싱클레어가 연상의 친구인 데미안의 인도를 받아 정신착란상태를 벗어나‘이 세상의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이 인도하는 길을 가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없다’라는 사실을 깨닫고, 오로지 내면의 길을 파고드는 과정을 그렸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패전으로 말미암아 혼미상태에 빠져 있던 독일의 청년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문학계에도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데미안이란 말은 데몬(Damon)과 같은 뜻으로 ‘악마에 홀린 것’이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헤세가 인도를 방문하고, 그 체험을 쓴 <싯다르타>는 구도자의 모습을 묘사했다. 싯다르타는 고타마 세존의 깨우침을 존경하면서 스스로 깨닫는 자세를 실천한다.

체험을 통해 깨달음에 도달하려는 수행자의 모습, 현대 미국작가 헨리 밀러(Henry Miller)는 신약성서보다 더 큰 치유력을 준 작품이라 평할 정도로, 영혼의 깨달음을 알려주는 구도 소설이다.

헤르만 헤서 박물관 전경./출처=픽사베이
헤르만 헤서 박물관 전경./출처=픽사베이

<황야의 이리>는 한 중년 남자의 유산계급 수용과 정신적인 자기실현 사이의 갈등을 묘사했다. 1930년 <지와 사랑>은 기존 종교에 만족하는 지적인 금욕주의자와 자기 자신의 구원 형태를 추구하는 예술적 관능주의자를 대비시켰다.

1943년에 발표되어 헤세에게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안겨준 <유리알 유희>는 극도의 재능 있는 지식인을 통해 사변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이중성을 탐구하였다.

1906년 <수레바퀴 밑에서>는 소중한 청소년기에 청소년들이 겪는 불안한 열정과 미래, 방황과 좌절을 섬세하게 묘사하였다.

1910년 <게르트루트>는 예술가의 내면세계를 그린 소설이다. 1914년 <로스할데>는 예술가의 내면과 외면을 탐구하는 헤세 자신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작품 중 명문장: 삶의 근원적 힘을 깨닫고 관조의 세계를 발견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_데미안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버둥거린다. 그 알은 세계이다. 알에서 빠져나오려면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의 곁으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라고 적혀있었다.” -데미안

“나는 고독 속에 빠져 갈피를 못 잡고 있었어요. 그런 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날, 내 친구 생각이 문득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 친구는 머리도 영리하고 아는 것도 많은 사람이지요. 나는 그때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지구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는 새의 그림입니다.”-데미안

"누구나 여러 과제와 문제에 부딪칩니다. 그러한 문제들은 단 한 번뿐이고 지나가버리는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삶 전체의 의미로 다가오지요…이 문제들은 '해결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견디고 체험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이며, 고통은 살이 깎이는 고통스러운 길 위에서만 삶이 되고 기쁨이 되고 가치 있는 것이 됩니다." - 헤세가 에두아르트 슈뢰더에게 보낸 편지에서

“실제로 내가 살아보려고 시도한 방법은 저절로 내 안에서 나왔을 뿐이다. 어째서 그것이 그렇게까지 힘들었을까?” -데미안

에피소드: 진정한 나 자신으로 사는 것

#1. 헤세와 분석심리학의 선구자 칼 융은 영혼의 닮은꼴로 1917년에 처음 만나 깊게 교류하면서 서로의 작품과 학문에 영향을 끼쳤다. 두 사람의 생각은 인간의 영혼(정신)은 대립이 아닌 조화와 균형을 이룬 상태를 이루는 삶의 의미이자 최종 목적지로 여겼다.

#2. 헤세는 인도를 평생 마음에 두었다. 독일 개신교 선교사 집안의 서재에 가득 들어찬 인도철학과 불교 서적은 시인을 꿈꾸는 헤세의 정신적 자양분이 되었다. 독서를 통해 습득한 인도의 철학과 종교는 문학적 사상에 목말랐던 그에게 반야의 세계였다. 인도는 헤세가 언젠가 찾아가야 할 피안의 언덕으로 자리 잡는다.

#3. 주인공 싯다르타는 세속에서 번뇌하는 인간으로 등장하여 이미 성불한 부처 고타마와 만난다. 싯다르타는 부처의 설법에 감동을 받지만, 스스로 깨우치는 길을 나선다. 헤세는 이 작품을 쓰면서 극심한 정신적 혼돈에 빠진다. 수행자 싯다르타가 해탈에 이르는 과정을 제대로 그려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헤세는 일 년 넘게 불교적 명상과 정신분석 치료를 거친 후, 싯다르타의 깨달음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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