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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프랜시스 베이컨, 고전 경험론의 창시자
[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프랜시스 베이컨, 고전 경험론의 창시자
  • 김진혁 작가
  • 승인 2023.06.23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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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작가] INTRO: 아는 것이 힘이다.

영국의 대법관, 철학자, 과학자. 기존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역적 방법론을 부정하고, 자연에 대한 관찰과 실험을 통해 과학적 사실을 점진적으로 구축해나가야 한다는 귀납적 방법론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여 고전 경험론의 창시자라 불린다.

생애: 어린 국새관 별명, 확실성의 단계를 확립하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1561년 런던의 요크하우스에서 국새관 니컬러스 베이컨 경의 아들로 태어남. 베이컨 가문은 영국 어떤 가문보다도 천재들이 쏟아진 전형적인 수재 집안이었다. 베이컨은 일생 내내 몸이 약해 어린 시절은 집에서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았다.

그는 케임브리지에서 엘리자베스 1세를 처음 만났는데, 그녀는 그의 조숙한 지능에 감명을 받아 그를 습관처럼 "어린 국새관"이라 불렀다고 한다.

15살에는 고위 법률가를 양성하는 그레이스 인(Gray's Inn)에 들어갔다. 그곳에 있으면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을 방문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그는 여행하는 동안 일상적인 외교 업무를 수행하면서 언어, 국정 및 민법을 공부했다. 그러면서도 영국 정부 및 여왕을 위해 영국에 외교 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18살에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베이컨은 영국으로 돌아온다. 그는 유산을 제대로 상속받지 못했고, 어릴 때부터 씀씀이가 컸기 때문에 항상 빚에 시달렸다.

베이컨은 정치에 관심을 가졌고, 20살에는 콘월 주의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고, 21살에는 그레이스 인의 외부변호사로 임명되었으며, 23살에 멜컴과 톤턴의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25살에 그레이스 인의 의장이 되었다.

나아가 27살에는 리버풀의 의원이 되었다. 그는 의원에 있으면서 법을 개정하고 단순화하기를 열망하는 자유주의 개혁가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는 비록 왕실의 친구였으나 봉건적 특권과 독재에는 반대했다. 또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통합을 옹호하여 영국 통합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베이컨은 32살, 미들섹스의 의원 자리에 있을 때, 세금을 올리자는 법안에 대해 반대하여 여왕을 화나게 했다. 하지만 베이컨이 36살이 되었을 때,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를 법률 고문으로 지정했다.

베이컨은 항상 통찰력있는 조언을 여왕에게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베이컨은 42살에 기사 작위를 받았다. 1613년, 52살의 나이에 법무장관으로 임명되었다. 57살에는 대법관(총리)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베이컨의 공직 경력은 1621년(60세)에 불명예를 얻고 끝나게 된다. 의회의 법 집행 위원회가 그를 23건의 부패 혐의로 기소한 것이다. 베이컨이 소송 당사자로부터 선물을 받았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베이컨은 4만 파운드의 벌금형을 선고받고 런던탑에 수감되었고, 귀족 칭호를 박탈당했다. 이후 베이컨은 공부와 글쓰기에만 전념하였다.

1626년 3월, 베이컨은 자신의 귀납적 방법으로 눈이 부패 과정을 얼마나 늦추는지 알기 위해 실험을 하다 독감에 걸려 한 달 후 사망한다. 묘지는 세인트알반스에 있는 성 미카엘 성당에 있다. 이를 두고 '근대 과학의 순교자' 같은 별칭이 붙기도 한다.

사상: 돈은 최고의 종이자, 최악의 주인이다.

베이컨은 과학혁명의 시조라 불린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을 했듯이 그는 경험주의자로서 학문에 대한 굉장한 열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데카르트는 대륙(합리론)을, 베이컨은 영국(경험론)을 대표하는 근대 철학의 개척자들이었다.

베이컨은 자연을 관찰하고 그 법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끊임없는 실험 사례들을 모으고 그 사례들을 분석하여 자연의 법칙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떤 현상의 결과를 미리 판단해선 안 된다. 정당한 순서에 따른 일반화가 되기 이전에 섣불리 단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인간의 감각은 자연의 미묘함에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새롭게 관찰되는 사실들을 단지 해석(interpretation)할 뿐이다.

베이컨은 아리스토텔레스의 3단 논법처럼, 처음부터 참인 지식을 전제로 논리적인 해답을 찾는 연역법을 비판한다. 그대신 자연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사례들을 나열하고 거기에서 지식을 얻어내는 귀납법은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도출해낼 수 있다.

베이컨은, '실험을 통해 증명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기존 지식들을 우상으로 보고 이들 우상을 타파해야 한다고 한다.

인간이 이성적 진리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하는 4개의 우상(idola)으로 종족(種族)의 우상, 동굴(洞窟)의 우상, 시장(市場)의 우상, 극장(劇場)의 우상을 든다. 앞의 둘은 개인의 내적 문제이고, 뒤의 두 개는 사회적 조건과 관련이 있다.

종족의 우상(The idols of the tribe)은 자연 현상들이 마치 거짓된 거울에 비춰진다. 어떤 것을 한번 믿으면 어긋나는 사실이 나와도 무시해버린다. 이 같은 믿음에는 인간 개인이 가진 생물학적 특징이나 사회적 정서 및 편견들이 포함된다.

동굴의 우상(The idols of the cave)은 인간 개개인은 어두운 동굴(개인의 동굴)에 갇혀있어 넓은 세계를 보지 못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이는 못하는 성향이 다. 어떤 지식을 받아들일 때 편견과 자신이 원하는 것만 선택한다.

시장의 우상(The idols of the marketplace)은 인간의 의사소통, 즉 언어가 가지고 있는 오류다. 시장에는 불완전하고 부적당한 의사소통만이 존재하고 운명이나 실체 등에 대한 쓸데없는 논쟁만 있다.

극장의 우상(The idols of the theater)은 무대 위의 마술·허구에 미혹되듯이 자신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고 기존 학문의 권위만 따라서 생겨나는 편견을 말한다.

어록: 아는 것이 힘이다.

“두려움 그 자체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무서워할 것이 없다.”

“사랑하면서 현명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돈은 최고의 종이자, 최악의 주인이다.”

“권위가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진리는 혼란보다 오류에서 더 빨리 밝혀질 것이다.”

“권력의 업적보다 재치의 업적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

“오래된 것이 좋은 경우가 네 가지 있다. 오래된 나무는 태우기 좋고, 오래된 와인은 마시기 좋고, 오래된 친구는 신뢰하기 좋고, 오래된 작가의 작품은 읽기 좋은 것이다.”

에피소드: 냉동 닭의 유령

#1. 1626년, 베이컨은 마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눈 속에서 풀이 푸른 것은 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곧 눈을 사용하여 식품을 보존할 수 있다는 영감이 떠올랐다. 그는 당장 실험을 하기 위해 마차에서 내려 닭 한 마리를 샀다. 그리고 그 닭의 배를 갈라 눈으로 채우고 이를 바라보며 실험을 하려 했다.

그런데 추운 곳에 오래 있었던 탓인지 베이컨은 한기를 느꼈고 오한 증세를 보이며 숙소로 곧장 돌아갔다. 2~3일 동안 격렬한 기침을 해대다가 1626년 4월 9일, 런던 외곽 하이게이트의 애런델 맨션에서 폐렴으로 숨을 거뒀다.

#2. "Knowledge is power"(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의 의미는 인간의 지식과 힘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원인을 모른 채 어떤 결과도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을 지배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이 밝혀지는 '자연'을 관찰하고, 거기서 밝혀진 제한적 앎으로 제한적 법칙을 새롭게 구성해내는 것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고, 인류를 행복하게 만드는 원천이 된다.

이와 반대로, 한국에는 '모르는 게 약'이라는 속담이 있다. '모르면 편할 것을 공연이 알아서 괴롭게 된다' 는 것을 풍자한다. 이는 자연을 관찰하고 지식을 쌓자는 베이컨의 의도와는 다르게, '앎'을 세상 기준과 심리적 측면에서만 살펴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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