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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조선왕조의 마지막 천재 화가 장승업
[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조선왕조의 마지막 천재 화가 장승업
  • 김진혁 작가
  • 승인 2023.07.28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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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작가] INTRO: 진정한 예술에 운명을 건다

안견, 김홍도 등과 함께 '조선의 3대 화가'로 불린다. 장승업의 그림은 단순한 필치로 그려졌지만 필력에 속도감이 있고 대담하다는 평이 있다. 장승업은 중국 청나라 후기의 필체를 그림에 도입하여 한국식 회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생애: 술과 방랑의 예술

장승업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어 고아가 되었다. 수표교(水標橋) 부근에 살고 있던 역관(譯官) 이응헌(李應憲) 집에 기식하면서 어깨너머로 그림을 배웠다.

그가 할 줄 알았던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고, 재능도 있어 40대 이후 그림이 원숙한 경지에 도달하여 대화가의 명성을 얻었다.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결혼은 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또한 그는 조선말기 서화가인 오경석(吳慶錫)의 동생인 오경연(吳慶然)의 집에 출입하며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화풍을 직접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다.

그는 술과 여자를 몹시 좋아하여 미인이 옆에서 술을 따라야 좋은 그림이 나왔다고 하며, 아무것에도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방만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의 예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에 왕자(王者)나 부호(富豪)가 별도 없었다.

그는 산수화, 도석·고사인물화(道釋·故事人物畵), 화조영모화(花鳥翎毛畵),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 사군자(四君子) 등 여러 분야의 소재를 폭넓게 다루었다.

작품세계: 자연과 주체가 만난 순간적 흥취

조선 말기에 활동한 화가. 자는 경유(景猷), 호는 오원(吾園)  "직업을 계승한다"는 의미의 '승업(承業)'이라는 이름으로 보아 중인(中人) 집안 출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성록>에 의하면 장승업은 38세 때인 1880년 도화서 화원 자격으로 별궁 영건에 참여하여 화원 조중묵·김시영·이경록 등과 함께 포상 받았다. 따라서 30대 중반 이전에 장승업은 도화서에 들어가 유숙·백은배 등 당시 화원들과 교유하며 공동작업에 종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장승업은 40세 때인 1882년 이후 오경연(吳慶然)의 집을 드나들기 시작하여 이곳에서 중국화를 많이 보게 되고 참고했다.

장승업은 누구에게 매이기 싫어하는 성품을 가졌다. 장지연의 <일사유사>에 전하는 궁중일화(宮中逸話)에 의하면, 장승업의 명성을 들은 고종이 그림을 맡겼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장승업은 술 생각을 못 참고 궁중에서 여러 차례 도망쳤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고종의 노여움을 사서 처벌을 받게 되기도 했다.

장승업은 술을 무척 좋아하였으며, 취하였을 때 좋은 그림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술대접을 잘 받고, 또 옆에서 미인이 시중을 들면 기분이 좋아 좋은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림의 대가(代價)로 받은 금전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단골술집에 맡겨두고 다 떨어질 때까지 오가며 마셨다고 한다. 장승업은 한때 기생과 살림을 차린 적도 있었으나, 오래 살지 못했다.

장승업의 후반기 생애는 술과 예술, 그리고 방랑으로 일관했다. 임금의 명을 받드는 궁중화사로서의 명성도, 그림의 대가로 받은 금전도, 가정생활도 모두 그에게는 구속일 뿐이었다.

장승업은 1897년 55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어디에서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장승업의 친구였다는 청일전쟁 때 종군기자였던 일본인 우미우라 토쿠야(海浦篤彌)가 "신선이 되어 갔다"고 하지만 술로 인해 죽었다고 보인다. 장승업의 주요작품은 <풍림산수도(楓林山水圖)>, 호취도, 세산수도, 송하노승도 등이다.

명언: 괴짜 화가, 술값으로 그림으로 내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뜬구름과 같으니 경치좋은 곳을 찾아 숨어버림이 좋을 것이요. 앓는다, 죽는다, 장사지낸다 하여 요란스럽게 떠들 필요가 없다.”

그가 그린 '풍진삼협(風塵三俠 : 어지러운 세상의 세 협객)'에는 말을 탄 두 협객만 그려져 있었다. 궁금한 제자가 "스승님! 제목은 세 협객인데 왜 두 협객만 그렸습니까?"라고 물었다. 오원은 너무나 태연스레 "한 협객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네. 저 산 뒤에 오고 있어."라고 말했다.

장승업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취화선’
장승업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취화선’

에피소드: 술자리를 즐긴 낭만 화가

#1. 장승업은 술을 무척 좋아했고 어느 한 곳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 화가다. 예의범절이 까다로운 궁중에서 그림을 그리다 밖으로 나오기 일수였다. 그의 성품을 아는지 일을 시킨 후 도망가지 못하도록 옷을 감추었는데 맨 몸뚱이로 궁궐을 빠져나오기도 했다. 보통 사람같으면 목이 날아갈 판이지만 고종은 잡혀 온 장승업에게 “에이 저놈의 술 냄새 고약도 하다”면서 껄껄 웃었다.

#2. 40여 세가 돼서야 부인을 얻었으나 하룻밤 자고 난 후 버리고 평생 다시 결혼하지 않은 채 자유분방하게 살았다. 그의 삶은 무척 드라마틱해 당시 세도가, 선비, 미술 애호가, 사랑방에서 단골 화젯거리였다.

#3. 장승업은 기인(奇人)이다. 호방한 성품에 달필의 붓으로 다양한 그림을 잘 그렸지만, 정식으로 그림 공부를 하지 않았기에 중국풍이라는 평가도 있다. 게다가 족보도 알 수 없는 까막눈이어서 작품 속 글씨는 다른 사람이 대신 썼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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