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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아이작 뉴턴, 근대 이론 과학의 선구자
[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아이작 뉴턴, 근대 이론 과학의 선구자
  • 김진혁 작가
  • 승인 2023.08.11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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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기자] INTRO: 수학과 과학에 미쳐 뉴턴 역학을 만들다

영국의 물리학자·천문학자·근대이론과학의 선구자. 과학혁명에 가장 큰 공헌을 세웠다. 수학에서는 미적분법을 창시하고, 물리학에서는 뉴턴 역학의 체계를 확립했다.

생애: 조산아에서 고전역학과 만유인력 발견

잉글랜드 동부 링컨셔의 울즈소프 출생.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사망하였고, 어머니는 그가 3세 때 재혼하는 등 불우한 소년 시절을 보냈다.

1661년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칼리지에 입학, 수학자 아이작 배로의 지도를 받아 케플러의 <굴절광학>, 데카르트의 <해석기하학>, 월리스의 <무한의 산수> 등을 탐독하였다. 

1664~1666년 페스트가 크게 유행하자 대학이 일시 폐쇄되어 뉴턴도 고향으로 돌아와 대부분의 시간을 사색과 실험으로 보냈다. 그의 위대한 업적의 대부분은 이때 싹텄다. 사과의 일화도 이때 있었던 일이다.

1667년 재개된 대학에 돌아와 이 대학의 펠로(특별연구원)가 되고 1669년 아이작 배로의 뒤를 이어 루카스교수직에 부임하였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최초의 강의는 스스로 수집·정비한 실험기구를 이용한 빛의 분산현상이다. 1668년 반사 망원경을 만들었다.

1688년 명예혁명 때는 대학 대표의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고, 1691년 조폐국(造幣局)의 감사(監事)가 되었으며, 1699년 조폐국 장관에 임명되어 화폐 개주(改鑄)라는 어려운 일을 수행하였다.

1703년 왕립협회 회장으로 추천되었고, 1705년 나이트 칭호를 받았다. 한편 신학(神學)에도 관심을 보여 고대사 해석을 검증하고, 천문학적 고찰을 첨가한 연대기를 작성하였다.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보냈다. 그가 주장한 ‘자연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운동하는 복잡하고 거대한 기계’라고 하는 역학적 자연관은 18세기 계몽사상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뉴턴은 1727년 3월 31일 84세의 나이로 잠자던 중 평안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민간인으로서 처음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다. 시인 알렉산더 포프가 뉴턴을 이렇게 평가했다.

“자연과 자연의 법칙이 밤의 어둠 속에 감춰져 있었다. 신(神)께서 말씀하시길 뉴턴이여 있으라 하시니 어둠이 모든 빛이 되었다.”

아이작 뉴턴./출처=픽사베이
아이작 뉴턴./출처=픽사베이

업적: 근대과학 성립의 최고의 공로자, 마지막 르네상스인

1668년 뉴턴식 반사망원경을 제작했다. 이 망원경은 천체관측 등에 크게 공헌했다. 수학에서는 1665년 이항정리(二項定理), 무한급수(無限級數), 유분법(流分法)등을 발견하여, 오늘날의 미적분법(微積分法)에 해당한다.

뉴턴의 최대 업적은 역학(力學)에 있다. 지구의 중력이 달의 궤도에까지 미친다고 주장했다. 중력의 발견은 천문학 전체의 빛이 되었다.

행성의 운동중심과 관련된 힘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수학으로 풀어내어 ‘만유인력의 법칙’을 확립하였다. 뉴턴이 확립한 운동과 역학법칙이 후대의 과학적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그는 진리의 힘으로 우리의 정신을 지배했다.

정통 금융 관료이자 인류 역사상 위대한 과학자로 지금까지 꼽힌다. 그의 능력은 다양해서 조폐국장의 자리를 25년이나 지키며 위조화폐를 막기 위한 화폐 개혁도 했다.

명언: 바닷가의 더 예쁜 조개를 찾는 어린애에 불과

“분발하라, 분발하면 약한 것이 강해지고 적은 것이 풍부해질 수 있다. 나의 소년 시절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허약하고 빈약했다. 나는 가장 건강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를 보고 결심하고 분발한 결과 몸이 건강해졌을뿐만 아니라 학교성적도 상당히 올라갔다.”

“나는 내가 세상에 어떻게 비춰질지 모른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나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은 채 내 앞에 놓여 있는 진리의 바닷가에서 놀며, 때때로 보통보다 매끈한 조약돌이나 더 예쁜 조개를 찾고 있는 어린애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멀리 앞을 내다볼 수 있다면, 그것은 거인의 어깨를 딛고 서있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상 뉴턴이 살았던 시대까지의 수학을 놓고 볼 때, 그가 이룩한 업적이 반 이상이다.”(독일의 수학자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가 말한 뉴턴에 대한 명언)

“천재는 인내이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열심히 생각한다면,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에피소드: 천재도 투기 앞에서는 무력한가?

#1. 페스트가 런던에 퍼지면서 고향으로 돌아가 피난하던 시기(1664~1666)의 산책 중에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다는 일화가 있다.

#2. 독실한 청교도 신자인 뉴턴은 어느 제자가 하느님이 없다고 주장하자, "하느님에 대해서 불경하게 말하지 말게. 나는 하느님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네."라면서 무신론을 주장하지 못하게 했다.

#3. 연구하는 도중에 배가 고파 뉴턴은 하인에게 계란을 가져오라고 했다. 하인이 계란을 가져왔지만, 풀고 있는 문제에 너무 집중을 하는 바람에 끓는 냄비에 계란이 아니라 시계를 넣었다는 일화도 있다.

#4. 뉴턴이 태양계 모형을 만들어 모든 행성들이 적절한 주기에 맞춰서 자전과 공전을 하도록 만들었다. 지나가던 행인이 말하길 “ 이야! 역시 당신은 훌륭한 과학자이십니다. 정교하게 자전과 공전을 일치시켰으니까요” 뉴턴이 대답했다. “그것을 만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저절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5. 영국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의 주가에 투자하여 전 재산을 잃고 이런 명언을 남겼다.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계산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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