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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리카싱, 능력·운·겸손의 리더십
[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리카싱, 능력·운·겸손의 리더십
  • 김진혁 작가
  • 승인 2023.08.25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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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작가] INTRO: 홍콩 청쿵 그룹 CEO 리카싱(李嘉誠)

개인 자산 약 30조원의 아시아 최고의 부자. 중학교 1학년 중퇴한 후, 작은 시계방의 청소부로서 하루 16시간씩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이후 능력과 운이라는 쌍두마차를 타고 ‘부의 제국’을 이루었다. 교만과 나태를 멀리하는 리더십을 발휘한 아시아의 워렌 버핏.

생애: 실패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다

리카싱은 2남 1녀의 장남으로 중국 광둥성 출생. 그의 아버지 교원으로 가난했고, 중일전쟁 때 홍콩으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결핵으로 사망. 리카싱은 불과 15세의 어린 나이에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중퇴하고 외삼촌의 시계공장에 취직하여 청소를 했다. 17세의 리카싱은 플라스틱 공장에 취직하여 죽을 힘을 다해 일을 배웠다. 2년 만에 능력을 인정받아 과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하루에 16시간씩 일을 했다. 22세 때 회사를 나와 독립을 시작했다. 그는 1950년 종자돈 7000달러를 들여 청쿵실업이라는 플라스틱 제조업체를 차렸다. 리카싱의 청쿵은 타고난 능력과 성실함으로 당시 홍콩 내 300여 개의 플라스틱 공장 중에서도 탄탄한 회사로 자리 잡았다.

1958년 부동산 산업에 진출. 1963년 결혼을 하였고 당시 지은 가옥에서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1972년 청쿵그룹(당시 청쿵실업)은 홍콩증시에 상장되면서 그 해에만 회사 가치가 65배 이상 증가하였다.

이후 운수회사 허치슨 왐포아를 비롯하여 1980년대부터 여러 운수기업을 인수하여 항만산업에 진출하였고 홍콩전력을 인수하기도 했다. 당시 주요 투자처였던 중국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덕분에 크게 성장하여 글로벌 대기업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2018년 장남인 빅터 리 부회장을 후계자로 결정하고 은퇴. 2019년 중국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유행에 대한 지원금 차원에서 1억 홍콩 달러(대한민국 원화로 약 153억 원)를 기부하였다.

평가: 거상, 포용과 신뢰로 조직을 이끌다

리카싱이 유명하게 된 이유는 바로 자신의 청렴한 삶 때문이다. 리카싱은 항상 낮은 자세로 부하 직원들을 한 사람씩 보살폈으며, 특히 단체로 식사를 할 때도 주요 측근들만 이끌고 최고급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믿을만하며 계급에 상관없이 일 잘하는 사람들과 회사의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같이 한다.

청쿵 그룹은 현재 청쿵 실업과 허치슨왐포아 두 개의 대표회사를 중심으로 전 세계 54개국에 500여 개 계열사, 22만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홍콩 사람들의 삶에서 청쿵(長江) 그룹은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라고 한다. 대부분은 청쿵 그룹이 지은 아파트에서 잠을 자고, 그들이 건설한 도로와 교량, 지하철 역을 통해 출퇴근하고 청쿵 그룹이 서비스하는 전화나 전기, 인터넷을 이용하고 청쿵 그룹이 만든 매장에서 식사를 하거나 필요한 물품을 산다. 이처럼 홍콩인들에게 청쿵 그룹은 의식주의 최대 제공자이다.

청쿵 그룹의 홍콩 주식시장에서의 비중이 거의 25%대를 차지하여 오죽하면 “홍콩인들이 1달러를 쓰면 이 중에서 5센트는 청쿵 그룹 리카싱 회장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말까지 있다.

리카싱 회장은 검소하고 청빈한 생활, 적극적인 기부와 교육 및 의료 자선 활동 등으로 홍콩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10년이 훨씬 지난 양복을 아직도 즐겨 입는다. 또한 손목에는 3만 원짜리 싸구려 시계를 차고 있다. 리카싱 회장은 지금도 회사에서 식사를 할 때면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똑같이 줄을 선다.

리카싱 회장의 리더십을 혹자는 ‘한 손에는 <논어>를, 다른 손에는 주판을 든 거상’ 또는 ‘재신財神’이라 부른다. 하지만 리카싱 회장의 리더십의 본질은 포용력이다.

그는 비록 자신에게 불편하고 불리한 여건이 조성되더라도 부하직원이나 조직원에게 절대로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또한 그는 “친분을 핑계로 사람을 쓰기 시작하면 그 회사는 망한다”고 말한다.

포용과 신뢰를 바탕으로 통합의 힘을 발휘한다. 독일 태생의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구상할 당시 남긴 자필 원고를 약 155억원에 낙찰 받기도 했다.

리카싱 전 회장은 중국의 홍콩반환 20주년을 맞은 지난 2017년 한 인터뷰에서 “간절하게 이루고 싶은 것은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거대한 꿈을 가진 사람은 단순히 사실을 늘어놓는 사람보다 강하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해 젊은이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명언: 멀리 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미래의 세계는 당신이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지식이 없으면 사업을 발전시킬 수 없다.”

“나는 언제나 최고의 부자가 된 나 자신을 상상했다. 비결이라면 그것뿐이다”

“멀리 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 다른 사람들이 물러날 때 나는 나아가고(人退我進), 다른 사람이 얻으려 할 때 나는 포기한다(人取我棄).

“의롭지 못한 채 부를 누림은 뜬 구름과 같다”

에피소드: 돈은 사용되어야지 낭비해서는 안 된다.

#1. 자동차 열쇠를 찾으려다 2홍콩 달러 동전을 차 밑으로 굴러 들어갔다. 자동차가 움직이면 하수구로 떨어질 것으로 생각해 구부려 동전을 주우려했다. 이 때 인도 국적의 직원이 차 밑으로 들어가서 동전을 주워왔다. 리카싱은 팁으로 100홍콩달러를 사례비로 주었다.

#2. 그는 평소에도 다양한 책과 전문서적을 즐겨 읽었다. 1957년 어느 날 플라스틱 전문잡지를 읽고 있었는데, 한 이탈리아 플라스틱 회사가 조화를 만들어 유럽과 미국 시장을 휩쓸고 있다는 기사를 접해 무릎을 딱 쳤다.

중국에는 축제도 많고 꽃을 좋아했지만, 당시 홍콩의 습하고 더운 날씨로 인해 생화는 가격도 비싸고 공급이 원활치 못했다. 그래서 리카싱은 생화처럼 똑같이 생긴 조화를 만들어 팔아 큰 성공을 이루었다.

#3. 덩샤오핑 중국 지도자가 개혁개방 정책을 펼쳤을 때 가장 먼저 중국에 투자를 단행한 해외의 기업인이다. 선전이 중국의 경제특구로 지정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이다. 후에 그가 산터우 대학교를 설립할 때 덩샤오핑이 직접 그를 만나 그간의 공적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2019년 8월 16일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 대해 폭력은 안된다는 내용의 공익성 광고를 웨이보에 게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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