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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헤겔, 칸트 철학 계승한 독일 관념론 철학자
[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헤겔, 칸트 철학 계승한 독일 관념론 철학자
  • 김진혁 작가
  • 승인 2023.11.03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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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작가] 프로이센 왕국의 철학자. 독일 관념론 철학을 계승하여 완성시켰다. 존재와 사유, 주관과 객관의 모순을 하나의 체계 안에서 일치시키려고 했으며, 논리학·법철학·역사철학·미학·종교학을 아우르는 거대한 체계를 구상.

헤겔은 전통철학의 완성자이자 현대철학의 비판적 출발점이다. 동시에 그의 철학은 극도로 난해한 철학으로 정평이 나 있어서 대부분은 입문 단계에서 포기하는 철학으로도 유명하다.

INTRO: 절대정신의 철학자

헤겔은 모든 사건에 숨은 본질을 절대정신이라고 생각했다. 개인과 사회의 자유가 함께 실현되는 이상적 공동체(인륜)를 꿈꾸었다. 대표작 《논리학》에서는 모든 현실과 역사 전개 과정을 변증법의 독자적인 이론을 펼쳤다.

생애: 나는 절대정신을 보았다

헤겔(G. W. F. Hegel, 1770~1831)은 뷔르템베르크 공국(지금의 독일 남서부 지역)의 수도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다.

고위 공무원 가정에서 태어나 별 고생 없이 유년 시절을 보냈고, 다섯 살 되던 해 라틴어 학교에, 일곱 살 때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김나지움 시절 그는 여러 분야에서 상을 타는 모범생이었다.

헤겔은 영리하고 지적이었지만 운동신경이 둔해 체조, 무술은 아주 못했다. 또 발표 실력도 형편없어 발표 태도나 음성 때문에 지적받곤 했다. 그의 말솜씨는 나중 교수가 되어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1793년 헤겔은 신학교를 졸업했지만, 목사가 되지 않았다.

신학보다는 철학에 더 관심이 많았고, 조국 독일의 낙후된 현실을 철학 정신으로 개선하고 싶은 욕망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쓴 책 《민족 종교와 기독교》에서 “민족정신을 아들에 비유했다.

그리고 민족정신의 아버지는 시대·역사이며, 어머니는 정치이다. 유모, 곧 아들의 교육자는 종교이고 예술은 유모의 보조 역할을 한다.” 이런 비유를 통해 민족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철학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당시 독일 학자들이 교수로 자리 잡기가 무척 힘들었다. 칸트가 9년 동안 가정교사 생활을 했던 것처럼 헤겔도 7년을 프랑크푸르트와 스위스에서 가정교사 생활을 하며 ‘학자로서의 혹독한 겨울’을 보냈다. 그러다 1793년 셸링의 초청으로 예나 대학의 사강사로 초빙되었다.

헤겔이 활동한 시기는 난세였다. 질풍노도 운동, 미국 독립 선언,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으며, 장년기에는 나폴레옹 전쟁이 유럽을 휩쓸었다. 말년에도 프랑스 7월 혁명으로 시작된 자유 진영과 보수 진영 사이의 혼란이 계속되었다.

잠시동안 독일 바이에른주 밤베르크에서 신문 편집 일을 했으며, 바이에른주 뉘른베르크의 한 김나지움에서 교장직을 맡았다. 1818년 독일 베를린 베를린 대학의 정교수로 취임했다. 1831년 콜레라로 사망했으며, 자신의 희망대로 피히테 옆에 안장되었다.

출처=픽사베이
출처=픽사베이

사상: 절대정신의 본질 자유

헤겔 철학의 기본 원리는 한마디로‘역사란 절대정신의 자기실현 과정’이다. 모든 사건에는 본질적인 면이 숨겨져 있다.

그 본질적인 면이란 절대정신(Absoluter Geist)이고, 인간의 역사는 이 절대정신의 본질이 점차 분명하게 드러내는 과정이다. 절대정신은 자유이고, 역사는 이성적인 자유를 점차 실현해 가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고대 국가에서는 군주 한 사람만 자유롭고 모두가 노예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서양 중세에는 군주뿐만 아니라 봉건 제후들도 자유로워졌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워진다. 역사의 발전은 절대정신의 영웅이 실현시킨다.

사고와 존재의 완전한 동일성(同一性)도 주장했다. 이성적인 것만이 진실로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반드시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전제 밑에서, 자립, 절대 이념의 철학을 확립하였다.

철학은 이성의 체계와 정립·반정립·종합의 3단계를 거치는 과정이다. 이 3단계의 변증법이 철학 체계의 전체를 이룬다.

'현실'이 곧 '이성'이 되는 로고스(logos)가 논리학이고, 그 절대자가 외적 존재의 형태로 자기를 외화(外化)하였을 때 이것은 자연이고 그 자연 인식이 자연철학이 된다.

헤겔의 업적은 자연적 존재 또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자율적 의지로부터 지식의 근본적 원리를 도출했다.

초인간적인 신(神)이나 자연, 객관적 지식의 철학적 전통에서 벗어나 인간의 주관성에 바탕을 둔 보편적 지식을 역설했던 칸트의 관념론을 받아들였다. 헤겔 자신은‘지식이 사물의 본질과 일치하는’ 진정 객관적인 지식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창한다.

명언:‘정-반-합’의 변증법

“진리는 언제나 여러 가지로 이야기된다.”
“철학자로 태어나다니 신의 저주를 받은 거야.”
“인생의 목표가 가치 있는 것일 때 비로소 인생은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 세상에 열정 없이 이루어진 위대한 일은 없다.”
“변화 자체만큼 영속적인 것은 이 세상에 없다.”
“모순은 모든 운동과 생명의 뿌리이다.”
“만물이 충동을 갖고 행동하는 것은 그 안에 모순이 내재되어 있을 때뿐이다.”
“세계의 역사는 다름 아닌 자유에 대한 의식의 진보에 있다.”
“철학이 회색으로 인생을 그리면, 인생은 늙어 버린다.”
“사람에게 일어나는 가장 슬픈 일은 마음속에 의지하고 있던 세계를 잃어버리는 일이다.”
“나비에게는 나비의 세계가 있고 까마귀에는 까마귀의 세계가 있듯 사람도 각기 자기가 믿고 있는 확고한 세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휴식은 지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다.”
“보다 높은 이상이 없었다면 인류는 쉬지 않고 일하는 개미때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행복은 작은 새처럼 붙들어 두어야 한다. 될 수 있는 한 부드럽게, 그리고 갑갑하지 않게 해야 한다. 작은 새는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되기만 한다면 기꺼이 수중에 머물러 있어 줄 것이다.”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마음의 안쪽에만 달려있다.”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먼저,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자기의 특수성을 강조하지 않는 사람이다.”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요,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

에피소드: 독일 관념론 철학을 완성시킨 근세의 체계적 형이상학자.

#1. 헤겔은 튀빙겐 대학 신학부에 입학하여, 여기서 철학자 셸링과 천재 시인 횔덜린을 만났다. 뒷날 거물급 인사가 된 이 셋은 1년 정도 한 방에서 같이 생활했다. 프랑스 대혁명이 내세웠던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은 세 젊은이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바스티유 감옥이 파괴되는 날을 기념하며 축배를 들었다.

#2. 《정신 현상학》에서 프랑스 혁명을‘어떤 내실도 갖추지 못한 죽음, 분열이고 양배추 대가리를 둘로 동강 친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라고 깎아내렸다.

#3. 헤겔의 ‘위대한 인물의 폭력(Gewalt)’이 ‘국가권력’(Staatsgewalt)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의심하고 마키아벨리를 통해 독일의 문제를 고민했다.

#4. 헤겔의 강의 실력은 형편없었다. 강의를 들었던 어떤 학생은 그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조금 언짢은 듯 머리를 낮게 숙인 채 몸을 움츠리고 앉아서 커다란 노트를 앞뒤로 넘기고 위아래로 훑으면서 계속 말을 하며 무엇인가를 찾았다. 말은 끊임없는 헛기침으로 계속 끊겼다. 그래서 문장들은 따로따로 떨어지고 뒤죽박죽 섞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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