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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 천재적 미술가·과학자·기술자·사상가
[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 천재적 미술가·과학자·기술자·사상가
  • 김진혁 작가
  • 승인 2023.12.08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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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작가] 이탈리아의 화가. 사람의 몸을 해부해 과학적으로 분석했고, 여기서 얻은 지식들을 수많은 인체 소묘와 회화로 표현했다. 음악, 화학, 천문학, 건축학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다양한 연구한 천재.

INTRO: 시대를 앞선 천재 화가

몇 시간씩 작품을 주시하면서 붓질 한 번 하지 않고 사나흘을 보내기도 했다. 서른이 된 레오나르도는 밀라노로 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밀라노는 피렌체 보다 큰 도시로, 예술과 과학과 학문이 발달한 곳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스포르차공작의 전속 화가이자 군사 기술자이자 건축가로 일하며 17년 동안 머물렀다. 이 시절 그는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과 교류하며 식물학, 광학, 수력학, 천문학, 해부학 등 온갖 분야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갔다. 또한 그는 웬만한 학자들보다 책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생애: 사생아, 화가로서 르네상스를 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작은 마을 빈치에서 태어났다. 공증인이었던 아버지와 시골 농부의 딸이었던 어머니는 신분 차이 때문에 결혼할 수 없어서 사생아가 되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사생아는 무척 낮은 신분으로 대학에도 갈 수 없고, 좋은 직업을 가질 수도 없었다. 그 이유로 다빈치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여 화가의 길로 들어갔다.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레오나르도는 피렌체로 가서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라는 화가의 공방 견습생이 되었다. 다른 견습생들과 마찬가지로 바닥 청소나 잔심부름 같은 허드렛일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열심히 그림 실력을 키워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스승이 그리다 만 그림의 귀퉁이에 천사들을 그려 넣었다. 제자의 솜씨는 스승을 놀라게 했고, 스승은 나이 어린 제자가 자신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린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그날 이후로 더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조각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훗날 레오나르도는 “스승을 능가하지 못하는 제자는 무능하다”라고 말했다.

1519.4.23,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서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이따금 자연이 하늘의 기운을 퍼붓듯, 한 사람에게 엄청난 재능이 내리는 것을 본다. 이처럼 감당 못 할 초자연적인 은총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서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과 예술적 재능을 고루 갖게 되는 일이 없지 않다.

그런 사람은 하는 일 조차 신성해서 뭇 사람들이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으니 오직 홀로 밝게 드러난다. 또 그가 내는 것들은 신이 손을 내밀어 지은 것과 같아서 도저히 인간의 손으로 만들었다고 보기 어렵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공방 시절 레오나르도는 스승인 베로키오 말고도 보티첼리를 비롯해 유명한 여러 예술가들 곁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단지 그들을 따라 하는 것을 넘어 자신만의 방법을 개발해 나갔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예술은 자연의 딸이다...다른 예술가의 방식을 흉내내지 말라. 그렇다면 예술은 자연의 딸이 아니라 자연의 손녀가 되고 말 테니까.”

이 시절 레오나르도의 그림 실력은 누가 보더라도 최고의 수준이었지만 주문받은 일감을 끝까지 완성시키지 않는 결정이 잦았다.

그의 대표작 모나리자는 피렌체의 부호(富豪)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를 위하여 그 부인을 그린 초상화로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의 초청을 받았을 때 이 미완성의 초상화를 가지고 갔었는데, 왕에게 4000에큐에 팔려 퐁텐블로성(城)에 수장되었다. 미루는 습관으로 인해 그가 그린 완성작의 수는 스무 점을 넘지 않는다.

출처=픽사베이
출처=픽사베이

업적: 다방면에 뛰어났던 만능 천재

다빈치가 살던 15~16세기 유럽의 미술 양식을 르네상스 미술이었다. 엄격한 구도와 완벽한 비례, 원근법 등 다양한 기법으로 다빈치의 작품에 잘 반영되어 있다.

다빈치는 원근법에 의한 과학적인 접근과 신체의 해부학적 구조, 수학적 비율 등을 정확하게 계산하여 그렸다. ‘스푸마토 기법’을 처음으로 도입하고 사실적인 묘사에 예술적인 상상력을 불어넣어 회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다빈치는 다양한 분야에 재능이 뛰어났다. 음악가, 건축가, 발명가, 화학자, 도시계획가, 물리 실험가인 동시에 논문과 시를 쓰는 작가였고, 뛰어난 화가이기도 했다.

관찰력이 뛰어나고 탐구력이 강해서 자연 세계의 현상과 원리를 연구하고 기록했지. 동물뿐 아니라 수십 구의 시체를 직접 해부하며 해부도를 그렸는데, 당시 의학자들이 그린 것보다 더 세밀하고 정확해서 의학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단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고안해 낸 헬리콥터 장치를 직접 제작해 시험 비행을 했다. 심지어 거울에 비춰보아야만 해독할 수 있도록 좌우를 바꾸어 쓰기도 했다. 그가 쪽지 종이에 남긴 그림들 중에는 오늘날의 낙하산, 비행기, 전차, 잠수함, 증기기관, 습도계에 해당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1500년 레오나르도는 밀라노를 떠났다. 밀라노가 프랑스에 함락되었기 때문이었다. 그후 프랑스 여름 궁정으로 알려진 곳에서 말년을 보냈지만 신경마비로 손이 불편해 그림을 못 그렸을 것이라는 연구가 있다. 그는 자신의 책, 그림, 스케치와 원고를 사랑하는 제자 프란체스코 멜치에게 맡겼다.

명언: 다방면에서 진정한 천재, 스티브 잡스의 심장

“잘 보낸 하루 끝에 행복한 잠을 청할 수 있듯이 한 생을 잘 산 후에는 행복하 죽음을 맞을 수 있다”
“옷을 입으면 추위를 막듯이 인내가 불의를 막아줄 것이다.”
“경험은 다른 사람의 말보다 진실한 안내자다”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적용해야 한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행동으로 해야한다.”
“무슨 일이든 시작을 조심하라.”

에피소드: 천재의 한탄,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허비했다“

#1. 레오나르도는 채식주의자였다. 부유층들이 기름진 음식과 진수성찬을 즐겨 먹던 그 시절, 그는 샐러드, 과일, 채소, 면 등을 즐겨 먹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쌀과 야채로 걸쭉하게 만든 수프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만의 건강관리 규칙을 쪽지 종이에 적어 놓기도 했다. “식탁을 떠나자마자 서 있고, 점심을 먹은 뒤에 바로 잠들지 마라. 술은 절제할 것이며, 자주 마시되 적게 마시고……화장실에 가는 일을 미루지 말라……”

#2. 레오나르도는 살라이에게 포도밭의 절반을 주겠다는 내용 등이 담긴 유언장을 작성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인 예순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미술사에 길이 남을 걸작과 다양한 분야에 걸친 업적을 남기고 쪽지 종이를 남겼다.“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허비했다”라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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