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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이백,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되는 시선(詩仙)
[김진혁의 얇지만 넓은 리더 이야기] 이백,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되는 시선(詩仙)
  • 김진혁 작가
  • 승인 2023.12.22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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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작가] INTRO: 방랑에서 정신의 자유를 찾는‘대붕(大鵬)의 비상(飛翔)’

인간을 초월하고 인간의 자유를 비상한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는 중국 대표 시인. 양현의 태백산(太白山)에 은거하면서 독서 하며, 벼슬하지 않았다. 직접 농사를 지으면 아침저녁 시를 읊조리면서 나뭇잎에 시를 써넣었다.

생애: <달타령> "이태백이 놀던 달아”

촉나라 출생(701~762) 자 태백(太白). 호 청련거사(靑蓮居士). 중국의 대표 시인으로 시선(詩仙)이라 불린다. 어릴 때 가난하게 살았다. 아버지는 서역(西域)의 호상으로 어린 시절 촉나라에서 보냈다. 1100여 편의 작품이 현존한다.

남성적이고 용감한 것을 좋아한 그는 25세 때 촉나라를 떠나 양쯔강(揚子江)을 따라서 장난(江南) ·산둥(山東) ·산시(山西) 등지를 편력하며 한평생을 보냈다. 젊어서 도교(道敎)에 심취했고, 시의 환상은 대부분 도교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55세 때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났을 때 현종에 의해 막료로 발탁되었으나 새로 즉위한 황자 숙종과 대립하여 옥중에 갇힌다. 뒤이어 유배되고 방랑한 탓에 당도(當塗:安徽)에서 병사하였다. 자녀로 2남 1녀를 두었으나 집안을 돌보지 않고 떠돌기만 한 인생이라 자손들은 가난해져 소식을 모른다.

“대붕(大鵬)이 날아 세상 끝까지 흔들리는데, 중천(中天)이 무너지니 구할 수 없구나/ 남은 바람이라도 만 년은 떨치련만, 부상(扶桑)을 노닐다 왼쪽 날개가 걸렸다./ 후인들아 이 소식 듣거든 전해다오, 공자가 없으니 그 누가 눈물 흘릴까. -<임로가(臨路歌)>-

업적: ‘술 속의 팔선(八仙)’발해 문서를 해독한 박식

당나라 현종의 치세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발해의 사신들이 와서 중요한 서신을 전달했지만 조정 누구도 서신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천자가 외쳤다. “이 많은 문관들 중에 단 한 명도 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다니”만일 사흘 만에 아무도 이 서신을 해독하지 못하면 신하들의 지위를 박탈하겠다고 겁박을 주었다.

그때 하지장이란 신하가 천자에게 다가와 “신이 폐하께 아룁니다. 이백이라는 뛰어난 시인이 있는데 여러 학문에 능통합니다. 그를 불러 이 서신을 읽으라 하소서.”

현종은 이백을 즉시 궁으로 불렀지만 이백은 응하지 않았다. 현종을 그를 달래기 위해 직위와 의복을 하사했다. 궁에 온 이백은 서신을 번역했다. 발해가 자유를 되찾기 위해 전쟁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편지를 읽은 뒤 박식하고 무시무시한 답신까지 구술하고 천자가 서명했다. 현종은 이백이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이라고 했다. 발해는 사과와 함께 공물을 보내왔다. 현종은 공물중 일부를 이백에게 하사했다. 그리고 술을 좋아하던 이백은 이 선물을 다시 주점 주인에게 주었다.

이백은 당시 부패한 당나라 정치에 불만이 많았고 자신의 정치적 재능으로 발휘할 기회를 바랐다. 그가 43세 되던 해인 한림공봉(翰林供奉)이라는 관직을 하사받았지만 한낱 궁정시인으로서 현종의 곁에서 시만 지어 올렸다. 방약무인한 태도 때문에 현종의 미움을 받아 마침내 궁정에서 쫓겨난다.

이백의 생애는 방랑으로 시작하여 방랑으로 끝났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시문집을 편집하였고, 주석으로는 원대(元代) 소사빈의 <분류보주 이태백시(分類補註李太白詩)>, 청대(淸代) 왕기(王琦)의 <이태백전집(李太白全集)> 등이 있다.

에피소드: 술과 달의 시인

#1. 애주가들의 우상, 술꾼을 보통 주태백(酒太白)이라고 부를 정도로 술의 대가였다. "이백은 달하고 서로 술을 주고 받았다."는 전설도 있었다.

특히 달을 굉장히 사랑하여 달을 읊은 시가 수없이 많은데 월하독작 등이 읽기도 쉽고 정취가 빼어나다. 심지어 야사에는 "그가 뱃놀이를 하다가 강에 비친 달을 보고 그걸 건지려다 뛰어들어 익사했다." 라고 알려질 정도이다.

#2. 외국어에도 능통해서 발해의 말을 알아서 당시 발해에서 온 외교문서를 처리하는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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