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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 빛과 인동초(忍冬草), 그가 지다.
뒤 빛과 인동초(忍冬草), 그가 지다.
  • 정 상 편집위원
  • 승인 2009.08.22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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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동(忍冬)은 겨울을 견딘다는 뜻이다. 물론 여기 겨울은 호락호락한 겨울이 아니다. 추위가 혹독한 나머지 자칫 많은 생물의 생명을 앗아가는 그런 잔인한 겨울이다. 이런 겨울을 견뎌 봄에 꽃을 피우는 인동초, 인동초(忍冬草)는 곧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물론 이 인동초의 생명력은 그저 숨쉬며 겨우 목숨을 연명하는 정도를 일컫지 않는다. 그 같은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줄기를 뻗어 끝내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인동초, 이는 끝내 승리를 일구는 것까지를 함께 함의한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를 일컬어 인동초에 비유하는 것은 너무나도 적절하다. 인동초 혹은 인동넝쿨은 가는 줄기에 꽃잎조차 여인의 아미 같아 참으로 여려 보인다. 이동초는 이 같은 연약함으로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혹독한 추위와 매서운 바람, 그리고 폭설을 견뎌 자신의 생명을 이어간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는 인동초적 삶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순하지 않는, 곧 혹독한 시련기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 시련기를 끝내 견뎌 이겨 내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제 15대 대한민국 대통령직에 오르고, 세계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 까지 했다.

이미 초고과 완성되었다하니 우리는 오는 가을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기를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든 때에 대통령 후보 김대중을 처음 만났고,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지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날을 맞고 있다. 결국 김대중 전 대통령과 나는 동시대인으로서 같은 공기를 숨쉬며 이 땅의 역사가 어떤 힘에 의해 창조되어 진전되어 가는 지, 그 상황을 함께 맞고 보았다. 굳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기를 읽지 않아도 그 분의 생애를 나는 알 수 있는 역사적 위치에 서 있는 셈이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인 김대중이다. 정치인 김대중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면을 모두 담고 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정치색을 벗은 김대중이다. 최근 일부가 공개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기에는 정치인 김대중의 모습과 함께 정치색을 벗은 인간 김대중의 면모가 함께 드러나 있다. 꽃을 많이 보고자 했고, 정원에 새를 부르며, 집사람을 무던히 존경하고 아끼는, 그러면서도 자식들에 대한 애정 또한 남과 다르지 않는 평범한 가장의 울타리 속에 그가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눈물 또한 많았던 모양이다. 그의 눈물과 함께 그에게서 정치색을 벗기니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최근 공개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기에서 우리는 그가 지닌 심성을 함께 보게 되는 것이다. 그도 결국 여린 한 인간이었으며, 그에게 덧씌워진 정치색은 그 동안 그의 인간적 면모를 상당히 가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새로운 면모를 대하니, 가급적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기가 빨리 출간 되었으면 하고 기다려진다.
어쨌든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국 정치사에 남긴 족적의 크기가 담겼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기, 그것은 역사서로서 후대에 길이길이 전해져 새로운 역사 창조의 디딤돌이 될 것이다.

나는 지난 4월 18일 오후 1시 43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줄 곧 관련 글을 쓰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었다. ‘성찰’이라는 제목을 비롯해 참으로 많은 제목을 떠올렸고, 그 제목 하에 글을 쓰 내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계속 쓰다말고, 또 쓰다말고 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는 사이 날이 훌쩍 지나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일이 내일로 다가왔다. 이러다간 국장일 이내에 관련 글 한편을 기어코 쓰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을 다잡고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러다가 급기야 잡은 제목이 바로 이 글의 제목 ‘뒤 빛’과 ‘인동초’다. ‘뒤 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호인 후광(後光)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고, 인동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언어이다.

아마 김대중 대통령의 아호인 후광은 뒤에 빛이 난다는 의미로 현재적 삶의 어려움을 끝내 승리로 이끌라는 뜻에서 누군가가 붙였지 않나한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를 뒤돌아 살핌에 후광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 민족의 영원한 승리를 위해고 곧 민족이 옳게 나아가도록 뒤에서 그 앞길이 보이도록 빛을 비추겠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옳을 듯 하다. 이래서 나는 글제를 ‘후광’이라 쓰지 않고, ‘뒤 빛’이라고 붙였다.

지난 8월 18일 오후 1시 43분, 인동초는 졌다. 비록 인동초는 졌을지 망정 ‘뒤 빛’은 영원하다. 즉 ‘뒤 빛’은 앞으로 우리민족이 나아가야 할 새 길을 훤히 비추며, 우리로 하여금 더 도도하고 당당하게 세계로 미래로 나아가도록 우리 모두의 앞길을 훤히 비출 것이다. 뒤 빛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세계인을 위한 숭고한 정신으로 남아 새 역사 창조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국가와 가난한 국민, 그리고 민족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생명조차 기꺼이 내놓으려 했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그러나 ‘많은 수의 국민’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것은 곧 한국 현실 정치의 참상이며, 우리의 현실 정치 및 우리 민족이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하는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인동초가 혹독한 겨울을 기꺼이 견뎌내는 것은 그 앞에 새봄이 반드시 놓여 있다는 것을 미리 알기 때문이다. 즉 우리네 삶의 고통 역시 그 너머에 기쁨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 한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난 ‘1월 7일(2009년)’ 일기, 그 날 쓴 단 한 줄의 일기가 내 가슴에 영롱한 빛을 발하는 아침 이슬로 맺혀 내게 희망까지 전한다.

2009.8.22 시인 정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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