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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불시착한 낭만주의자, 시인 류근
21세기에 불시착한 낭만주의자, 시인 류근
  • 이명훈 기자
  • 승인 2013.12.27 2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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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런 개 같은 시인이 아직도 이 척박한 땅에 살아남아 있었다니. 나 언제든 그를 만나 무박삼일 술을 마시며 먹을 치고 시를 읊고, 세상을 향해 우람한 뻑큐를 날리고 싶네." - 이외수 -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노랫말을 쓴 시인 류근은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충북 충주에서 자랐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했으나 이후 작품 발표를 하지 않다가 등단 18년 만인 2010년, 시단의 관행을 깨면서 전작시집 『상처적 체질』(문학과지성사)을 첫 시집으로 출간했다.

대학 졸업 후 광고회사 등에서 일하다가 홀연 인도 여행을 하고 돌아와 강원도 횡성에서 고추 농사를 짓기도 했다. 대학 재학 중 쓴 노랫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 김광석에 의해 불려지면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현재 소설가 정영문과 이 인 동인 ‘남서파’ 술꾼으로 활동 중이다.

류근 시인은 이상의 광기와 도취, 기형도의 서정과 성찰, 함민복의 상처와 눈물이 이종교배되어 탄생한, 21세기에 불시착한 낭만주의자라고 불린다. 류근은 자신을 '삼류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이라 칭한다. 그의 첫 산문집『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는 혹독하고 완고한 자기풍자를 감행하며 세상과 타인의 아픔을 대신 앓는 시인의 뼈저린 기록들을 엮어낸 것이다.

시인 류근은 시인들 사이에서 소문 혹은 풍문으로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천재라는 소문도 있었고 술주정뱅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심지어는 미치광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정신의 좌우, 몸의 앞뒤를 자유자재로 바꿨다. 몇십억대 자산가라는 소문도 있었고, 돈 한 푼 없는 거렁뱅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돌아가신 소설가이자 신화학자인 이윤기 선생이, 그를 가리켜 3대 산문가라고 칭송했다는 미확인 소문도 있었고 요절한 가수 김광석이 흠모했던 작사가라는 소문도 있었고, 애인이 백 명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심지어는 써놓고 버린 시가 수천 편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그는 천재이면서 술주정뱅이이고, 자산가이면서 거렁뱅이고 만인의 연인이면서 천하의 고아 같은 외톨이다.

시인은 세상이 아름다워서, 슬퍼서, 외로워서, 부끄러워서 울었다. 낮밤 가리지 않고 술을 마셨다. 자신을 소멸시키면서까지 사랑을 했다. 눈물과 술, 사랑의 고통은 시인의 상처이자, 슬픔의 근원인 동시에 또한 그것들을 달래주는 진통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견디며 건네는 류근 시인의 언어는 그가 아무리 ‘시바’, ‘조낸’이라고 외쳐도 읽는 이에겐 다르게 읽히게 된다. 그의 말들은 그가 겪어낸 고통과 상처 아픔과 외로움의 소산, 궁극엔 사랑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참을 수 있는 것을 참는 게 무어 참는 건가.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아야 진짜 참는 거지.
견딜 수 있는 것을 견디는 게 무어 견디는 건가.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진짜 견디는 거지.
사랑할 수 있는 것만 사랑하는 게 무어 사랑인가.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해야 진짜 사랑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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