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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省察)과 통찰(洞察) 그리고 혜안(慧眼)
성찰(省察)과 통찰(洞察) 그리고 혜안(慧眼)
  • 정 상 편집위원
  • 승인 2009.08.3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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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省察)과 통찰(洞察) 그리고 혜안(慧眼)

60년의 세월은 역사를 뒤집어 놓기에 충분한 모양이다. 철옹성인 듯 영욕의 세월을 지켜가던 일본의 자민당 정권마저 무너져 버렸다. 일본의 자민당 정권이 왜 무너졌는가를 따지기 전에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역사가 창조하는 새로운 역사의 시기다.

근대에 들어 세계는 1,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역사의 대전환기를 맞는다. 바로 영국을 중심으로 하던 세계사의 중심축이 북미 대륙으로 옮긴 것이다. 이로부터 64년, 지금 세계는 정권차원이 아니라 세계사를 움직이는 큰 흐름의 측면에서 큰 전환기를 맞았다.

지금까지 세계사는 분명 가진 자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바로 자유주의와 결탁한 자본주의가 세계사의 중심축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근년 들어 세계는 이에 대한 성찰을 기초로 새로운 세계에 대한 통찰을 시작했다. 물론 그 도입의 역사가 짧은 것은 아니었지만 제한된 국가에만 머무르던 사회주의적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체제가 세계사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제는 가진 자의 시대가 아니라 다함께 가지는 공유, 공존의 새 시대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나는 2002년 출간한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는 ‘복합 산문집’의 부제를 ‘공존'이라고 달았다.

그렇다. 지금 세계는 창조적 자유의 가치를 숭상하되 공존의 가치를 수용해야 한다. 80년 대 이후 세계는 공존을 위한 사회주의적 자본주의가 빚는 비효율성에 대한 반성을 촉구했고, 이에 기초해 세계사는 자유주의의 부활을 통한 세계사의 새로운 진전을 기대했다.
소위 대처리즘 혹은 워싱턴 컨센서스에 기초한 신자유주의가 그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세계화라는 신 물결을 만들었고, 이 신 물결을 확산시키는 데에 군사기술을 전용한, 소위 인터넷을 포함한 디지털 신기술이 총동원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세계를 통합시킨 이 신기술이 지식의 보편화와 함께 신대중의 시대, 곧 사회주의적 자본주의를 확산시키는 전기가 되고 있다. 이제 국수주의에 가깝던 일본마저 지난 50년 이상 일본을 지배해왔던 자민당이 어제(30일) 치러진 총선거에서 민주당에게 대패함으로서 신일본의 시대를 열었다.

신일본의 시대는 그저 창출된 것이 아니라 세계사의 흐름이 반영된 것으로서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역성)혁명에 갈음한다. 이로서 이제 일본 역시 중앙집권적 과료주의 사회라는 기존의 틀을 벗고, 국민이 중심이 되는 (지방)분권과 자율이 강조 되는 새로운 세계사의 흐름을 수용하게 된 셈이다.

일본의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국정운영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일로 당분간 일본 사회는 격랑 속에 휘둘리게 될 것이다. 자칫 이후 일본 사회는 새로운 분열과 갈등에 휩싸이면서 세계사의 흐름을 부정하는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사의 신 흐름이라는 큰 틀을 일본 역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번 일본의 변화는 긍정적이다. 지금 세계는 지난 60년에 대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대한 통찰을 시작했다. 옳은 통찰을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혜안(慧眼)이다.

2009.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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