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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人피플-배우 정문선] 연극인으로 산다는 것!
[피플人피플-배우 정문선] 연극인으로 산다는 것!
  • 이명훈 기자
  • 승인 2014.01.15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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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모르는 사람이 남의 눈에 띈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중 앞에서 혹은 무대에서 남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본 모습은 어떨까.

배우가 가지고 있는 첫 모습은 연기를 통해서 드러난다. 외모, 목소리, 의상, 연기력 등 모든 것을 한눈에 보여주는 배우들의 실제 삶의 목소리는 무엇일까. 또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사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거나 조금 색다르거나,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타인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대신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배우의 삶이야 말로 정말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유명한 배우라는 것은 많이 알려진 점도 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남의 삶을 잘 표현해 내거나 가공의 인물 혹은 캐릭터를 진짜처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찌보면 가짜 인물의 모습을 진짜로 살아내는 그들의 근본적인 모습은 허무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배우라면 또 어떨까. 진실한 삶을 살고는 있겠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과는 달리 연기로 표현해 내야 하는 타인의 삶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서 무명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무명이라고 해서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겉으로만 무명일 뿐,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고수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연극배우로서 살아가는 한사람이 눈에 띈다. 지난해 12월, 성북구 아리랑 아트홀에 몇장의 같은 포스터(사진, 연극 가든)가 입구에 붙어 있었다. 언뜻 지나가다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 한 명의 배우는 여러 명이 함께 찍은 사진의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 본 결과, 그가 보내고 있는 눈길은 젊고 아리따운 외모와는 달리 뇌쇄적인 눈빛과 고혹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남자 배우의 투박한 손길이 놓여진 곳이 여배우의 가슴 언저리라서 그럴지는 몰라도 아련한 상상력과 묘한 흥분을 자극시키는 포즈와 자태. 하기야 그의 눈빛으로 보여준 강렬했던 인상은 사진 한장으로만 봐서는 표정연기인지 진짜 느낌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치 관객들의 심리를 잘 알고 있다는 듯 살포시 보내고 있는 여배우의 눈빛은 연극의 배경인 갈비집에서 풍겨내는 고기냄새와 더불어 우리들 속내음을 진득하게 표현하며 아른아른 방출하고 있었다.

얼굴조차 잘 알지 못했던 여배우가 혼자서 포스터를 촬영했다면, 빛을 발하지 못했을 장면은 여러 명이 함께 있었기에 아마도 은밀한 관음의 흥분과 자극을 배가 시켰던 것 같다. 그런 그의 눈빛을 바라보면서 관객을 끌어들이는 끼가 다분하게 느껴졌다. 사실 관객이 궁금해서 만나고 싶었던 배우가 아니라 순전히 기자의 호기심이 발동해 만났기에 알고 싶었던 것도 간단했다.

"포스터에 실린 표정연기 하나만으로 첫 눈에 시선을 사로잡은 배우이고, 끼와 매력이 다분해 보이는데, 대중을 상대로 하는 연기자로서 지금은 무명이지만 과연 앞으로 성공을 기원하며 관심있게 지속적으로 꾸준히 지켜볼 수 있는 배우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일종의 검증작업이었다. 그리고 "관객들이 공과 시간을 들여서라도 이 배우의 연기를 지켜보며 함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겠는가"라는, 일종의 "싹수(?)있는 배우인가"를 미리 알아보자는 의도였다. 그 해답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연기에 대해서 한결같이 믿음을 주는 진실된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게으르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중입니다." 연극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배우 정문선 씨의 말이다.


그는 대학교 4학년 때 연극무대에 처음으로 발을 들였다. 전공은 광고 홍보였지만, 연기에 대해서 "죽을 때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정말 후회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몇번의 망설임과 수많은 고민 끝에 연기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25살 무렵이었다. 본인은 연기를 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라고 느꼈다. 그렇지만 연기를 배우려면 드라마나 영화보다는 접근성에서 볼 때 그나마 연극 극단이 입문하기 수월하다고 판단해 극단에 들어가 허드렛일부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공연 포스터를 붙이고, 연극무대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는 선배들의 의상을 거들었다.

처음에 반신반의하던 연극계 선배들도 어느덧 마음을 열고 격려를 보내주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공연을 함께 해보자고 손짓을 보내줬다. 그렇지만 넉넉하지 못한 공연비와 빠듯한 생활비에 갖가지 아르바이트는 늘 단골로 병행하는 생계수단이었다.

"힘들더라도 버티자라고 이를 악물었어요. 중간에 흔들린 적도 많았죠. 그렇지만 지금은 죽을 때까지 해보자라고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처음부터 돈이 목적이 아니었고, 정말 힘들지만 짧은 기간 동안 다른 사람의 삶을 진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과 타인의 삶을 알게 되고 내 자신이 그런 삶을 살아낼 때 재미있다고 느꼈습니다. 좋아서 하는 일인거죠. 물론 내가 좋아서 한다는 것 자체가 이기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죽을 때 이 일을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그는 처음에 연기를 시작하고 싶었던 이유가 "사극 드라마를 보는데 한복이 너무 예뻐 보였어요. 연기를 하게 되면 매일 예쁜 한복을 입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후 배우의 길을 걸으면서 본인의 연기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도 전달했다.

"제 생활이 힘들었기 때문에, 타인의 삶을 연기한다는 것이 저에게 있어서 현실도피라는 위안감을 잠시 제공해줬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연기는 나 자신만 이득이고, 관객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느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이기적인 셈이죠. 그래서 지금은 그러지 않으려고 내 자신을 비우려고 노력합니다. 관객분들이 제 연기를 봤을 때, 편안한 신뢰감을 주는 정말 믿음직한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연기에 대한 믿음을 주는 배우. 백지같은 배우가 꿈이죠."

그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잠시 당부의 말을 건넸다. "배우들은 연기가 인상깊지 않으면 처음부터 관객들의 눈에 띄기도 힘들다. 그렇지만 어찌하든지 배우가 무대에 설 기회를 얻고 연기를 펼칠 수 있다면 큰 행운이다. 관객들이 그런 모습을 관심갖고 지켜봤을 때, 지속적으로 좋은 모습 혹은 성장하는 모습을 배우가 보여주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배우에게 인지도가 생기고 연기를 좋아하는 고정 관객들, 즉 팬층이 형성됐을 때 그들을 한결같이 잘 대하고 관리하는 것도 배우로서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과 역량이라고 여겨진다."

이 말을 들은 정문선 배우는 이렇게 화답했다.

"저는 진실한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유명한 배우들도 있겠지만 연극계에는 숨어 있는 고수들이 많습니다. 연극계에는 한 장면만 보여줘도 관객의 마음에 깊은 감명을 주는 알려지지 않은 명배우들이 정말 많습니다. 저 역시 연기에 대해서 신뢰를 주는 진실된 배우의 모습을 관객분들께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관객분들께서 한눈에 알아보거나 혹은 그렇지 못하거나... 그렇게 배우들은 많고 다양하지만 그래도 저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속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올해 31살이 됐다. 본격적으로 연극배우 생활을 한지 5~6년, 자신은 열심히 사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산다고 좋은 연기가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소신을 밝혔다. 왜냐하면 그렇게 살면 연기도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쫓겨서 관객이 보기에 편안하고 좋은 연기가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매일 매일 힘들어도 힘들어 하지 않고 연기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게 정문선 배우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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